책 제목에서 보듯 인류의 중요한 식량자원인 물고기가 역사 속에서 얼마나 큰 위치를 차지했는지에 관한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만일 물고기가 없었다면 인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저자는 주저 없이 물고기가 없었다면 인류가 번성하고 번영하기는커녕 생존하는 일 자체가 녹록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난 수천 년간 인류가 이룩해낸 찬란한 문명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적어도 13~17세기 ‘청어’와 ‘대구’는 유럽 국가들의 부의 원천이자 중요한 전략 자원이었으며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였다는 것이다. 책은 어떻게 청어가 유럽 세력 판도를 바꾸고, 대구 떼가 신항로 개척시대의 역사를 돌렸는지, 미국 독립혁명 당시 ‘자유’의 상징이 됐는지 등에 관해 설명한다.
중세시대엔 성욕을 억제하기 위한 식량이자 도구로 기독교가 청어를 사용했는데 이 청어가 결국 경제 판도를 바꾸고 유럽사와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세 유럽의 기독교는 육류를 ‘뜨거운 고기’라 해서 엄격히 금지했다. 마음속에 성욕이 불같이 일어나게 하고 죄를 짓게 한다는 이유다. 특히 기독교는 사람들이 육류를 섭취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1년 중 거의 절반이나 되는 기간을 ‘단식일’로 정해 엄격히 지켰다. 그렇지만 1년의 절반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식일에도 적은 양이나마 뭔가를 반드시 먹어야 했는데, 그 대안이 생선이었다. 생선은 ‘차가운 고기’라 하여 성욕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여겼다. 이후 단식일에도 생선만은 먹는 것이 허용됐다. 한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식일에 단지 생선 먹는 일을 허용하는 정도를 넘어 ‘적극적으로 생선 먹는 날’로 변화해 갔다.
그러더니 급기야 단식일이 ‘피시 데이’로 바뀌고 엄격히 시행됐다. 이렇게 되자 중세 기독교가 만든 피시 데이 관습은 엄청난 생선 수요를 창출했고 거대한 시장 형성으로 이어졌다. 거대한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해 어업이 발달했으며 어업 장려 운동도 일어났다. 복합적 경제 시스템이 구축됐고, 그 시스템을 장악한 상인연합세력 한자동맹(Hanseatic League)과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 네덜란드가 등장했다.
청어의 이동 경로 변화는 13~17세기 유럽의 세력 판도를 뒤흔들어놓았다. 13세기 초반 무렵 발트해 연안의 도시 뤼베크 근해에서 어부들이 거대한 청어 떼를 발견했다. 곧이어 인근 도시 어부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청어잡이에 나서면서 청어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청어 시장 규모가 급속히 커짐에 따라 발트해 연안 도시의 상인들이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동맹을 결성했다. 1241년의 뤼베크와 함부르크 간 동맹 결성이 시초였는데 이는 유명한 한자동맹의 원류가 됐다. 한자동맹은 점점 규모가 점점 커지더니 얼마 후 수십 개의 도시가 참여하는 거대 조직이 되었다. 바야흐로 한자동맹은 유럽의 경제적 패권을 장악했으며 그 패권은 200년 가까이 이어졌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다. 한자동맹의 경제적 패권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결정적 원인은 청어 떼가 갑작스럽게 산란 장소와 회유 경로를 발트해에서 북해로 바꾼 데 있었다. 이 작지만 큰 변화 하나로 한자동맹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바통을 북해 연안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가 이어받았다. 이로써 그전까지 강대국 스페인의 지배를 받으며 존재감이 전혀 없던 나라 네덜란드가 족쇄를 벗어던지고 신흥 강국으로 부상했다. 네덜란드가 청어를 중심으로 유럽 최대 어업 강국이 되고, 더 나아가 17세기 헤게모니 국가로 발돋움하여 전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데에는 빌럼 벤켈소어라는 어부가 개발한 ‘소금에 절인 청어’가 큰 몫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