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에 엄마가 집을 나갔다. 할머니 밑에서 부단한 노력 끝에 유명 아이돌 가수로 성장한 고 구하라씨 얘기다. 그녀는 큰 세상을 펼쳐보기도 전에 ‘악플’에 시달리다 지난해 11월 29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비정한 엄마’는 그녀의 편안한 영면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20년 만에 느닷없이 딸 장례식에 나타나 재산의 절반을 요구했다. 상속인의 결격사유에 ‘부양의무 소홀’은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의 ‘맹점’을 교묘히 파고든 것이다. 민법은 상속인 결격사유를 살인·상해 등 범죄, 사기·강박 등 유언을 방해하는 행위 등 5가지로 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부양의무 개념은 상대적이라, 이를 결격사유로 본다면 법적 분쟁이 빈번해질 수 있다’고 결정한 바 있다.
자식이 죽자 부모가 재산·보상금 등을 챙겨가는 것은 인륜에 비춰볼 때 볼썽사납다. 구씨의 오빠가 상속제의 부당함을 담은 일명 ‘구하라법’을 청원했지만, 20대 국회는 끝내 외면했다. 구씨의 오빠는 어제 “평생을 슬프고 아프게 살았던 동생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며 눈물을 쏟아냈다. 부양을 조건으로 상속받은 자식들이 ‘나 몰라라’ 하자 이를 돌려달라는 부모들의 ‘불효 소송’도 급증하는 추세다. 19대 국회에서 불효를 막겠다는 ‘효도법(불효자 방지법)’까지 발의됐다니 말문이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