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운동가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 제기로 그간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언급돼 온 ‘피해자 중심주의’와 ‘일본군 성노예’, ‘정신대’, ‘위안부’ 등의 개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토론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차제에 관련 개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공감대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26일 외교가와 학계 등에 따르면 이번 사태에서 논란의 정중앙에 선 것은 피해자를 중심에 두고 구제와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뜻의 ‘피해자 중심 해결’이다. 2015년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합의가 졸속이었음을 지적할 때 빠지지 않는 논리다. 2017년 외교부 태스크포스(TF)의 2015년 위안부 합의 검토보고서에도 이 표현이 사용됐다.
‘피해자 중심 접근’은 위안부 합의가 있기 10년 전, 전시(戰時) 여성 인권과 관련해 2005년 12월 유엔총회 결의안에 등장한다.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용어로, 이번 사태와 관련해 갑자기 만들어진 용어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 의미에 대한 사회적 토의는 부족했다는 지적이 많다. 한·일관계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세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피해자 중심 접근은 정부 간 협상에서 피해자들의 입장이 수렴돼야 한다는 것이 한 축”이라면서도 “다른 측면에서 보다 다원적인 피해자들의 입장을 수렴해야 한다는 의미로까지는 확장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2015년 위안부 합의에 참여했던 당시 정부부터 ‘피해자’와 정의기억연대 등 ‘피해자 단체’를 동일시했던 정황이 드러난다. TF 보고서는 “(당시) 외교부는 협상에 임하면서 양국 정부 사이에 합의하더라도 피해자 단체가 수용하지 않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므로 피해자 단체를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졌다”고 언급했다. ‘박근혜 외교부’가 이해를 구하는 대상을 피해자 단체, 즉 정의연으로 한정했다는 것이다. 이 할머니의 이번 문제 제기가 있기에 앞서 2004년에도 고 심미자 할머니 등 피해자들이 단체로 정대협(정의연 전신) 활동을 비판했지만, 정부와 정의연 어느 쪽도 ‘여러 견해를 가진 피해자’를 상정하지 않았다.
‘성노예(sexual slavery)’, ‘위안부(comfort women)’, ‘정신대’ 등 할머니들이 당한 인권 유린을 가리키는 표현에 대해서도 그 의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 할머니는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선 “정신대(군수공장에 강제동원된 여성 근로자)를 다루던 정대협이 위안부 문제를 고명으로 썼다”고 언급했고, 7일 회견에서는 “성노예라고 하는데 더럽고 속상하다”고 말했다.
위안부를 번역했을 때 쓰이는 ‘콤포트(comfort)’라는 표현이 강제성을 직접 연상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정부와 학계는 국제사회에서 성노예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쓰고 있다. 일본 인권변호사 도쓰카 에쓰로(戶塚悅朗)도 본인의 의사에 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성노예라는 표현이 맞다고 설명했다. 다만 유엔에서도 피해자를 직접 ‘성노예’로 지칭하기보다는 이 문제를 전체로 다룰 때 주로 사용한다. 일본 정부는 ‘성노예’ 표현에 극히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