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국가보안법이 어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다. 이 법은 홍콩 내정 개입과 국가분열 등 행위와 활동을 금지·처벌하고 이 업무를 집행할 기관을 홍콩 내에 설립하는 게 핵심이다. 중국대륙의 사회주의와 홍콩의 자본주의가 공존한다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원칙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홍콩자치와 자유의 사망을 선고한 반인권적 법안이란 비판이 쏟아진다.
11월 재선을 앞두고 중국 때리기에 여념이 없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가만있을 리 없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그제 홍콩이 고도의 자치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의회에 보고하며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 및 대중 제재절차에 돌입했다. 홍콩보안법이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개최도 제안했다. 미 의회는 중국 이슬람 소수민족의 인권 탄압책임자를 제재하는 위구르 인권법을 통과시켰다. 중국은 내정간섭이라며 “미국이 중국을 겁박하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반발했다. 미·중 대립이 사상 최악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안보는 미국에 기대고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선 곤혹스러운 처지다. 미 국무부는 일주일 전 워싱턴에서 한국 등 11개국 외교당국자를 불러모아 홍콩보안법의 문제점을 설명하며 반중전선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도 얼마 전 “한국 측의 이해와 지지를 얻을 것으로 믿는다”고 노골적인 압박을 가했다. 과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때처럼 한국 외교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신세로 전락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동맹인 미국이 최우선이지만 전략적 파트너인 중국과 적대관계가 되면 한반도에 정말로 신냉전이 올 수 있다”고 했다.
외교부는 “일국양제 하에서 홍콩의 번영과 발전이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전략적 모호성에 기대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으려는 고민이 묻어난다. 하지만 어려운 때일수록 원칙이 중요한 법이다. 우선 미국 등 국제사회와 연대해 인권에 역주행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게 옳다. 그러면서 코로나19, 핵무기확산 등 주요 현안별로 공통 이해와 상호협력의 길을 찾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두 나라와 우호 관계를 깨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실사구시의 지혜로 장기적 국익을 도모하는 전략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