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에게 억대 연봉을 주는 세 종류의 회사가 있다. 골드만삭스와 같은 세계적 투자은행, 매킨지와 같은 일류 컨설팅 회사, 김앤장과 같은 대형 로펌이 그곳이다. 졸업증명서 외에는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는 사회 초년생에게 입사 첫해부터 거액의 연봉을 건네는 이들 회사는 당연히 많은 구직자에게 선망의 대상이지만, 대부분의 구직자에게는 엄두도 못 낼 만큼 문턱이 높은 직장이기도 하다. 이런 고임금 엘리트 일자리는 누가 어떻게 차지하는가.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노스웨스턴대학교 켈로그 경영대학원 교수인 로런 A 리베라는 이 점에 의문을 품었다. 저소득층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아이비리그를 졸업하고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회사 ‘모니터 딜로이트’에서 일한 적이 있는 ‘비전형적’ 배경의 엘리트인 그는 전형적 배경 출신의 엘리트 집단이 고임금 일자리를 독차지하는 현상에 주목해 2년여에 걸쳐 이들 기업의 채용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차별적인 채용 관행에 들추어 낸 결과물이 이 책이다. 입사와 동시에 상류층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그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들어가는 것인지에 대해 연구했다. 채용 담당자 120명과의 심층 인터뷰, 캠퍼스 채용설명회 및 취업박람회 관찰, 그리고 이들 중 한 곳의 인사팀에서 9개월간 인턴으로 일하며 그들이 무엇을 근거로 역량을 정의하고 인재를 선별하는지 밝혀낸다.
내용을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들 고임금 엘리트 직장은 집안 배경에 힘입어 명문대에 진학한 이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책에 따르면 고소득 엘리트 기업 평가자들은 백인, 상류층·중상류층 문화와 연관되는 활동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축구, 야구, 탁구와 같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스포츠보다 라크로스, 필드하키, 테니스, 스쿼시, 조정처럼 경기를 하려면 돈을 들여야 하는 ‘클럽’ 스포츠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은행가이자 열렬한 스쿼시 선수인 샌딥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당신은 디트로이트의 공립학교에서 스쿼시 선수를 결코 발견할 수 없을 겁니다. 코트가 없기 때문이죠. 심지어 그들은 그런 게임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모릅니다.”
저자가 인터뷰한 한 은행가는 “저는 이 사람이 투자은행가인 삼촌과 함께 자라서 어린 시절부터 항상 투자은행가가 되고 싶어 했는지, 아니면 그들이 뉴스에서 투자은행이 급여가 가장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지원했는지 궁금하다. 만약 돈 때문에 이끌렸다면 그들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했다. 그의 발언에서 보듯 명문대 졸업생이 아니거나 명문대 졸업생임에도 전형적인 상류층 출신이 아닌 지원자들은 이들 회사에 입사하는 행운을 누릴 수 없었다.
미국 엘리트 고용시장에서의 유유상종, 그들만의 리그를 단적으로 설명한다. 책은 잔인(?)하지만 고임금 엘리트 일자리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님이 분명하고 그들만의 채용 관행이 계층의 재생산에 기여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저자는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채용 과정에서 운동장이 기울어지지 않았는지 감시하고 살피는 것이 특권의 재생산을 방지함은 물론 기업의 경쟁력에도 도움이 된다고 제언한다. 업무 역량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 없이 개인적 호감도에 의존하여 직원을 채용하는 많은 조직이 되새겨야 할 지점이다.
책의 원제목은 ‘혈통, 엘리트 학생들이 엘리트 일자리를 얻는 방법’(Pedigree: How Elite Students Get Elite Jobs)이다. 취업시장에서 말하는 혈통(Pedigree)으로는 엘리트 기업 고용주들이 채용 후보자들의 성취 기록을 지칭할 때 줄임말로 사용하는 용어이나 여기서는 지원자의 사회적·경제적 배경을 떠올리게 한다. 명문대 입학에 유리한 금수저들이 고임금 일자리까지 독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극히 미국적인 상황이라 치부할 수 있으나 사회지도층의 각종 취업비리가 터져 나오는 우리 사회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에서 씁쓸하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