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과 맞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폭력이 난무하는 흑인 시위로 인해 다소 난처한 입장이 되었다. 이번 시위는 백인 경찰관이 흑인 주민한테 저지른 가혹행위에서 비롯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성격도 짙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바이든 전 부통령은 흑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고 이번 대선에서도 흑인 유권자 표심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자칫 ‘폭력을 옹호한다’는 비판을 트럼프 대통령 등 반대 진영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꽤나 신중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다.
31일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전 부통령은 미 전역을 뒤덮고 있는 인종차별 반대시위의 ‘폭력성’을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미국인은 시위를 할 권리가 있다”는 말로 이번 시위에 정당한 측면이 있음을 인정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자신의 대선 캠프 관계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백인 경찰관이 흑인 주민한테 저지른 것과 같은) 잔혹함에 맞서 시위를 하는 건 정당하고 필요한 일”이라며 “그것은 전적으로 미국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지역사회에 불을 질러 다 태워버리는 등 불필요한 파괴 행위는 (미국적 방식이) 아니다. 타인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폭력 역시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상점 등의 문을 닫게 만드는 행위 역시 아니다”라고도 했다.
한마디로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것은 옳으나 폭력시위만은 안 된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오마바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내 흑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최근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바이든 전 부통령을 적극 지지하고 나서면서 ‘이미 흑인 유권자들 표심을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백인 경찰관이 조지 플로이드란 이름의 흑인 주민을 잔혹하게 제압해 결국 질식사에 이르게 만든 사건은 바이든 전 부통령과 민주당이 ‘백인 우월주의가 강하다’는 지적을 받는 현 트럼프 행정부, 그리고 공화당을 공격하는 데 있어 호재가 될 법도 하다.
하지만 시위의 성격이 평화적 행진 수준을 넘어서 경찰서 등 공공기관에 난입하거나 주차된 백인 운전자의 승용차에 불을 지르고 심지어 백인 주인이 운영하는 상점을 약탈하는 사태로까지 변질하자 ‘폭력에는 선을 그어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시위대에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가 자칫 트럼프 대통령 등 반대 진영으로부터 “표를 얻기 위해 폭력까지 옹호하는 인물”이란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감안됐을 것이란 게 미 언론의 분석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