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네 개의 사과가 있다. 첫 번째는 이브의 사과다. 인류의 시조 아담은 그것을 먹고 원죄를 지었다. 두 번째는 아이작 뉴턴의 사과다. 뉴턴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스티브 잡스가 창업한 애플의 사과다. 베어 문 사과는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과 혁신을 상징한다. 가장 위대한 사과는 네 번째 사과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비는 사과(謝過)를 가리킨다.
한자의 사(謝)는 ‘면하다’, 과(過)는 ‘과오’를 의미한다. 지난 잘못에서 벗어나는 것이 사과라는 얘기다. 사과를 지칭하는 영어 apology는 그리스어 apologia에서 나왔다. ‘그릇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이란 뜻이다. 사과의 의미는 동양과 서양이 똑같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사과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고칠 줄 아는 대통령이었다. 남북전쟁 시절에 북부 수도방위 책임자인 스콧 대령이 링컨을 찾아와 아내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휴가를 허락해달라고 간청했다. 링컨은 “지금 이 나라에 슬픔으로 가슴이 무너지는 사람이 어디 자네뿐인가”라고 나무랐다. 다음날 링컨은 스콧을 찾아가 고개를 숙였다. “국가에 헌신하고 아내까지 잃은 자네에게 못할 짓을 했네. 용서를 비네.” 링컨을 위대한 대통령으로 만든 사과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가 투병 중인 아버지를 대신해 최근 광주 5·18민주묘지를 찾아 참회했다. 상복 차림의 그는 방명록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리며 대한민국 민주화의 씨앗이 된 고귀한 희생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라고 적었다. 아버지 이름으로 꽃을 바친 뒤 열사의 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지난해에 이은 세 번째 참회였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저지르게 마련이다. 죄를 일컫는 영어 sin은 ‘과녁을 벗어나다’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사과는 삶의 과녁을 벗어난 인간에게 선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신께서 열어둔 출구다. 잘못을 저지른 인간에게 만회의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우리 주위에는 잘못을 범하고도 한사코 발뺌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으로 돌아갈 길을 스스로 봉쇄한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