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1일 취임일성으로 “통합당이 진취적인 정당이 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이를 “진보보다 더 앞서가는 것”, “진보보다 더 국민 마음을 사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보수 일각에서 제기되는 ‘민주당 2중대’ 비판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된다.
이날 공식 임기를 시작한 김 위원장은 국회에서 첫 비대위 회의를 열고 “정책적인 측면에서도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비대위는 이날 회의실 벽면에 ‘변화, 그 이상의 변화’라고 쓰인 현수막을 걸어 눈길을 끌었다. 통합당의 한 비대위원은 “김 위원장이 ‘진취’라는 말을 강조했는데, 이는 진보를 모방하는 게 아니라 이보다 상위 정신, ‘우리만의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비대위원은 “산발적으로 정책 몇개를 뜯어고치는 건 이벤트성”이라며 “좌우 이념보다는 국민의 삶, 국가 공동체와 미래를 우선순위에 두고 거기에 필요한 의제들을 전면적으로 배치할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비대위 안팎에서는 김 위원장이 향후 ‘호남-여성-청년’에 방점을 둔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관측한다. 한 비대위원은 “김 위원장이 청년은 청년위원들이, 여성은 여성위원들이, 호남은 모두가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수도권에 있는 30% 넘는 호남 출신 인사들의 표를 얻을 방안을 잘 궁리해보라고 주문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원들에게 정강·정책 개편(김병민), 청년 발굴·육성(정원석 김재섭), 여성·보육(김현아 김미애), 4차산업·직능(성일종) 등 각각 분야를 나눠 혁신과제를 마련토록 했다.
또 사무총장에 재선 출신 원외인 김선동 전 의원을, 당 대변인에 방송 기자 출신인 초선의 김은혜 의원을, 비대위원장 비서실장엔 기재부 차관 출신인 재선의 송언석 의원을 각각 기용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주 내로 부총장단과 특보 등 남은 인선을 마무리 짓고 다음주부터 본격적인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 인선에는 당초부터 시간이 좀더 걸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차기 여연원장으로 수도권에 출마했다 낙선한 인물들을 비롯해 학계 등 원외 인사를 염두에 두고 지난 주말에도 두루 접촉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연을 전격 해체할지, 개조 작업을 추진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文대통령·김종인 청와대 회동 성사될까
문재인 대통령과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청와대 회동 성사 여부가 관심사다.
문 대통령은 21대 국회 출범과 때를 맞춰 야당과 ‘협치’를 하겠다는 자세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여야가 정기적으로 만나도록 추진해 보라”고 청와대 강기정 정무수석에게 지시했고, 전날엔 청와대에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통합당 주호영 양당 원내대표와 오찬회동을 가졌다.
문 대통령은 양당 원내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협치의 쉬운 길은 대통령과 여야가 자주 만나는 것으로, 아무런 격식 없이 만나는 게 좋은 첫 단추”라며 “앞으로 정기적으로 만나 현안이 있으면 얘기하고, 현안이 없더라도 만나 정국을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여야 지도부와 회동을 계속 이어갈 뜻을 나타냈다.
청와대 고위당국자는 1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회동에 대해 “언제든지 만나야죠”라고 밝혀 ‘문·김 회동’ 성사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통합당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다소 껄끄럽게 생각하는 김 위원장과 마주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당의 한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들을 계속 만나려고 할 것이고, 대표 회담은 안 하려고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위원장은 2016년 20대 총선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삼고초려로 비대위 대표를 맡아 민주당이 여당인 새누리당을 제치고 제1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듬해 5월 실시된 조기 대선을 2개월 앞두고 당을 떠나 문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형성했다고 할 수 없다.
더욱이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공개한 자신의 회고록에서 문 대통령에 대해 “인간적인 배신감마저 느꼈다. 정치 도의를 떠나 기본적인 인성의 문제”라고 비판까지 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과 함께 근무한 자유한국당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이 몇 차례 영수회담을 요구했으나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김 전 위원장을 ‘패싱’하는 대신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참석하는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청와대에서 두 번 가졌다.
8월 29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가 선출되면 문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동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그동안 여야 대표 회동 여섯 번, 여야 원내대표 회동 네 번,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단독회동을 한 번 했다.
황용호 선임기자·장혜진·김민순·이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