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다시 정조준했다. 검찰이 4일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삼성 경영권 부정 승계 의혹 수사는 분수령을 맞았다. 이 부회장이 검찰이 아닌 외부인사로부터 의혹에 대한 판단을 받겠다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를 신청한 사실이 공개된 지 하루 만에 구속영장 청구가 이뤄지자 재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미·중 갈등으로 기업들의 경영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불확실성이 커져서다.
◆검찰, 전격 구속영장 청구 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구속영장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혐의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했다. 자본시장법 위반과 외부감사법률 위반이다. 검찰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인한 삼성 경영권 승계작업을 이 부회장이 주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일어난 불법 행위를 지시했거나 최소한 묵인하고 있다고 봤다는 의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경영권 승계작업에 대한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면서 “승계작업을 위해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진행됐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재계 “경영환경 악화에 구속영장” 반발
재계 안팎에서는 코로나19와 미·중 갈등으로 기업들의 경영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구속영장이 새로운 리스크로 떠오르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경영학)는 “불과 수십 시간 전에 이 부회장이 수사심의위를 통한 판단을 요청했는데, 검찰은 서둘러 구속영장부터 청구했다”며 “검찰 스스로가 수사 결과의 적법성을 평가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의 구속영장이 받아지면 사실상 수사심의위가 필요 없어진다는 것이다. 조명근 명지대 교수(경제학)도 “이번 구속영장 청구는 적법성과 당위성을 알기 어렵다”며 “이 부회장에게 도주 우려나 증거인멸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구속수사가 필요할 만큼 중대한 사안인지를 국민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제 관심은 법원에 쏠린다. 구속영장 청구를 받은 서울중앙지법은 우선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앞서 방대한 기록을 검토해야 한다. 서울중앙지검은 당초 이날 오전 11시까지 구속영장 기록을 법원에 넘길 예정이었지만, 한 시간가량 더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수백여권의 수사기록을 트럭을 통해 옮기면서 시간이 더 걸렸다.
법원 판단에 대한 예상은 엇갈린다. 그만큼 쟁점이 많고, 복잡한 사건이라는 의미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승계 작업에 대한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판단 내렸고 수사에서 내부문건도 많이 나온 것으로 알려진다”며 구속영장 채택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반면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이 사건은 옳고 그름이 분명하지 않다”며 “재판에 가서 결론을 내려야 할 문제다. 다툼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라며 기각 가능성을 높게 봤다.
법원의 판단 결과는 수사심의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영장이 발부되면 수사심의위가 불기소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영장이 기각될 경우 수사심의위에서 검찰의 수사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형성될 수 있다.
이도형·정필재·권구성 기자 scop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