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위기입니다”… 사실상 사법부·국민 향한 마지막 읍소

휴일 호소문 발표 배경 / 신경영 27주년 공식 행사 없이 / 사법리스크 대응에만 총력 다해 / 수사심의위 소집 무력화 우려에 / 자제했던 입장문 세 차례나 배포 / “李 부회장 부재 삼성 발목 잡나” / 구속 여부 외신도 일제히 관심

7일 배포된 삼성의 호소문은 사실상 사법부와 여론을 향한 메시지라는 게 재계 안팎의 해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하루 앞둔 상황에서 간절하게 내놓은 신상 발언 성격이라는 것이다.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이날 호소문의 첫 구절은 “삼성이 위기입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따른 현재의 위기 상황이 삼성은 물론 한국 경제 전체의 위기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경영이 정상화돼야 한다는 점을 부각했다. 삼성은 “지금의 위기는 삼성으로서도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다”며 “장기간에 걸친 검찰수사로 정상적인 경영이 위축돼 있다”고 밝혔다.

◆급박한 삼성 분위기… “참담한 심정”



이날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했던 ‘신경영 선언’을 내놓은 지 27주년을 맞은 날이었다. 하지만 삼성은 공식 행사 없이 ‘사법 리스크’ 대응에 총력을 다했다. 그만큼 현재의 위기 상황에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삼성의 위기감은 단순히 총수의 부재 가능성만을 고려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코로나19 사태의 여파가 회복되지 않은 가운데 미·중 무역분쟁, 한·일 경제 갈등 재발 등의 악재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까지 구속 갈림길에 놓여 전례가 없는 ‘위험’이라는 게 삼성의 인식이다.

특히 이 부회장 측이 검찰에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했지만, 곧장 구속영장 청구가 이뤄진 것을 두고 수사심의위 자체가 무력화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1년 8개월간 50번 넘는 압수수색과 430여회에 걸친 관계자 소환 조사 등에 협조해왔다”며 “수사심의위 요구에 이어 바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변호할 기회를 빼앗는 처사로 느껴져 참담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5월 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열린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 입장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삼성은 호소문에서도 “법원과 수사심의위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위해 몇 가지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자 한다”고 밝히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 등을 둘러싼 의혹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일부 언론에서 제기된 추가 의혹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삼성은 “최근 일부 언론을 통해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거나 출처 자체가 의심스러운 추측성 보도가 계속되고 있고, 그중에는 유죄 심증을 전제로 한 기사들까지 나오고 있다”며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무리한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삼성은 전날 이 부회장이 승계작업 보고를 직접 받았다는 보도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고, 이 부회장이 시세 조종 등의 의사 결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결코 있을 수 없는 상식 밖의 주장”이라고 맞섰다.

삼성은 최근까지만 해도 이 부회장에 대한 공식 반응을 자제하던 기류였다가 지난 주말부터 세 차례 입장문을 배포했다. 세간에 제기된 의혹들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을 경우 사법적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조치로 보인다.

◆일각선 “구속 가능성 작아”… 외신도 일제히 관심

재계 안팎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이 수사 마무리 국면에 무리하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일정한 주거지가 없는 경우와 증거인멸, 도주의 염려 등이 구속 사유로 명시돼 있다. 이 부회장의 경우 대기업 총수로 경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상황에서 도피를 택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코로나19로 출장을 핑계로 해외 도피를 시도하는 길도 막힌 상황이다.

李 부회장 설 포토라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하루 앞둔 7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앞에 포토라인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2년 가까이 수사를 진행한 마당에 뒤늦게 증거인멸을 염려할 상황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수사가 사실상 대부분 끝나고 최종 기소를 남겨놓은 단계에서 수순을 밟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사법부의 판단이 남아 있지만, 추후 재판은 불구속 상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기업 총수가 구속 기로에 놓인 상황에 외신들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삼성과 이 부회장이 코로나19 테스트 키트의 생산을 늘리는 등 코로나19 사태 해결에 핵심 역할을 했지만, 지금 이 부회장만큼 위태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부회장의 구속 위기가 삼성그룹 전체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 부회장에게 유죄가 선고된다면 대신할 인물이 있을지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