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 간 이어져온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정의연 전 이사장인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을 둘러싼 논란에 문재인 대통령이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정의연과 윤 의원 관련 의혹을 폭로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를 거론하며 위안부 운동의 대의가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연의 회계부정 등 의혹이 불거진 것과 관련해선 그간 시민단체의 활동을 되돌아보는 계기라고 평가하면서도 정의연이나 윤 의원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정의연과 윤 의원 관련 논란에 “이번 논란은 시민단체의 활동 방식이나 행태를 되돌아볼 계기가 됐다”며 “기부금 통합 시스템을 구축해 기부금 또는 후원금 모금활동의 투명성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정의연의 회계부정 의혹이 제기된 것을 겨냥한 발언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정의연 사태에 대해 입장을 밝힌 건 지난달 초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 이후 논란이 확산한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후원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 수 있다면 기부문화도 성숙해질 것”이라며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도 투명하게 관리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매우 혼란스럽고 말씀드리기도 조심스럽다”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위안부 운동의 대의는 굳건히 지켜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없는 위안부 운동을 생각할 수 없다”며 “특히 이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라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많은 분이 세상을 떠나고 열일곱 분의 할머니만 우리 곁에 남아 계신다”며 “위안부 진실의 산증인들이자 누구의 인정도 필요없이 스스로 존엄하다”고 덧붙였다. 위안부 운동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세계사적 인권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며 “결코 부정하거나 폄훼할 수 없는 역사”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정의연 관련 논란과는 별개로 이번 사태를 위안부 운동 자체에 대한 공격에 이용하는 세력을 향해서는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운동의 대의를 손상하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며 “피해자 할머니의 존엄과 명예까지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시도는) 반인륜적 전쟁범죄 고발과 여성인권 옹호에 헌신한 위안부 운동의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운동은 현재진행형”이라며 “피해자의 상처는 치유되지 못했고 진정한 사과와 화해에 이르지 못했다, 지금의 시련이 위안부 운동을 발전적으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부연했다.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은 정의연 사태로 위안부 관련 단체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사이의 갈등이 지속돼서는 안된다 점을 강조하는 한편, 이번 사태의 해법으로 시민단체 회계부실 근절책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논란으로 여권 일각과 지지자들 사이에선 이 할머니와 다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향한 비판이 쏟아져나왔고, 반대로 국내 위안부 운동 전반에 대한 부정이나 폄훼를 시도하는 이들도 있었다는 점을 모두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이날 정의연과 윤 의원을 직접 거명하지 않은 점은 ‘윤미향 감싸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계산으로 보인다. 반면 이 할머니에 대해서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라는 표현으로 존경심을 나타내면서 이번 사태가 진영논리로 흘러가선 안 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