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안쪽부터 내핵, 외핵, 맨틀, 그리고 지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지각의 맨 위인 지표면에서 매일의 삶을 살고 있다. 맨틀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외핵과 가까운 쪽이 온도가 더 높고, 지각에 가까운 쪽은 온도가 낮아, 맨틀은 마치 가스레인지에 올린 냄비 안 물처럼 대류운동을 하게 된다. 암석으로 굳어 함께 움직이는, 지각과 상부 맨틀로 구성되어 있는 커다란 덩어리가 바로 판(plate)이다. 그 아래 맨틀의 대류로 인해 맞닿아 있는 두 개의 판 사이에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누적되기도 한다.
바닥에 벽돌 둘을 동서로 나란히 붙여 놓고, 양쪽에서 두 손으로 접촉면을 향해 힘을 주어 밀면서 동쪽 벽돌은 북으로, 서쪽 벽돌은 남으로 힘을 주어 보라. 남북 방향의 힘이 크지 않을 때에는 접촉면에서의 마찰력으로 말미암아 두 벽돌은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남북 방향의 힘을 점점 크게 하면, 결국 벽돌은 미끄러지게 된다. 남북 방향으로 누적된 스트레스가 미끄러짐으로 인해 해소되면 벽돌은 다시 붙어 멈추게 된다. 과학자들이 지진을 설명하는, 붙었다가 미끄러졌다가를 반복하는 스틱슬립 운동(stick-slip motion)이다. 버티다 버티다 결국 미끄러지기 시작하는 짧은 순간 지진이 발생하고, 한곳에서 만들어진 미끄러짐은 다른 곳의 스트레스를 급격히 늘려 새로운 미끄러짐을 만들기도 한다. 급작스런 미끄러짐이 만든 파동은 지진파의 형태로 진행하여 우리에게 도달해 큰 피해를 미치기도 한다.
스틱슬립 운동의 예가 주변에 많다. 바이올린 줄을 활로 수직으로 밀어 소리를 내는 것도 그렇다. 둘 사이의 마찰력으로, 활과 줄은 하나가 되어 횡으로 함께 움직인다. 줄의 변위가 점점 커지면, 처음의 상태로 줄이 다시 돌아가려는 힘이 커진다. 이 복원력이 결국 마찰력을 이기면 줄은 원래의 위치로 재빨리 미끄러져 돌아가면서 줄을 따라 진행하는 파동을 만든다. 이 파동이 전달되어 바이올린 울림통의 공명을 일으키고, 결국 우리 귀에 들리는 멋진 바이올린 소리를 만든다. 스틱슬립 운동이 꼭 듣기 좋은 소리만 내는 것은 아니다. 뻑뻑한 문이 바닥에 닿아 만들어 내는 소리, 쇠못으로 유리창을 긁을 때의 소름 돋는 끔찍한 소리도 스틱슬립 운동의 결과다.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