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답답하다.” “막막하다.” “네 식구 먹여 살려야 하는데….”
최근 서울·수도권 고용지원 기관들에서 만난 중·장년들은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일할 힘도, 능력도 넘치지만 오라는 곳이 없다. ‘40대 고용 절벽’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덮치자 일자리 자체가 말라붙었다. 아직 일터에 발붙이고 있는 이들에게도 남 얘기가 아니다.
◆“코로나로 갈 곳 없어… 뭐 먹고사나”
“5개월이나 이력서를 냈는데,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은 단 한 번이었어요. 이제는 뭘 어찌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경기 안양시의 40대 후반 A씨는 지난해까지 표면실장기술 업체의 팀장이었다. 매출 악화로 월급 밀리기가 밥 먹듯 했다. 3개월 동안 아예 임금을 못 받자 권고사직했다. 직장 바깥은 더 추웠다. 사람을 뽑는 곳도 드문 데다 그나마 연령제한에 걸렸다.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따봐도 별다를 게 없었다. 그는 “어느 직종이든 청년과 경력자를 우선 채용한다. 정부·지자체에서 장년층 채용에 인센티브를 줘서라도 일자리를 늘려줬으면 좋겠다”며 절박해했다.
고용 절벽은 일자리 지원기관들에서도 확인됐다. 지난 10일 서울의 한 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은 신모(49)씨는 “살면서 배운 게 인쇄기술뿐인데 경기가 어려워 한순간에 잘렸다”며 “코로나19 때문인지 일이 아예 없어서 집에서 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전기배선 기술자 정모(57)씨 역시 3월에 일터에서 밀려났다. 그는 “요즘은 일이 없어서 구직활동을 하려 해도 뭘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일만 할 수 있으면 전국 어디든 갈 것”이라고 했다.
신모(58)씨도 직원 수 35명인 건설사에서 지게차를 몰다 지난달 권고사직 당했다. 그는 “코로나19로 2월부터 일이 없었는데, 석 달을 버티다 나 포함 4명이 지난달에 잘렸다”며 “아직 살 날이 많아서 뭘 먹고 살지 고민”이라고 했다. 치과기공사로 일하다 3월에 권고사직된 김모(50)씨는 “구직활동을 계속하고 있지만 코로나 때문에 사실 답이 없다”고 막막해했다. 울산 취업지원센터 관계자는 “매년 6월쯤이면 실업급여 신청하는 분들이 주는데 올해는 여전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삶의 ‘상수’된 실업의 두려움
취업 상태인 이들에게도 실업의 공포는 상존한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달 30∼40대 직장인 2385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6.4%가 “코로나19로 급작스럽게 퇴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78.6%)·여성(77.4%) 직장인이 대기업(71.7%)·남성(74.9%) 직장인보다 불안감이 컸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가 지난 3월 직장인 1만983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55%가 “현재의 경제 위기로 고용불안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실업의 스트레스는 일상을 뒤흔든다. 울산에서 20년간 구직자 심리상담을 한 이모 상담사는 “불안하고 두렵고 실망스럽고 내가 왜 이렇게 돼버렸나 낙담하는 등 온갖 감정에 휘말리게 된다”며 “평범한 분들도 굉장히 날카로워지니 하루 두세 번씩은 상담센터에서 소리 지르고 책상 치는 분들이 생긴다”고 전했다.
일자리를 잃는 고통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2020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8년 저소득 가구의 자살생각률은 실업자가 8.3%로 가장 높았고 이어 비경제활동인구 6%, 취업자 2.9% 순이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등이 1970∼2007년 유럽 26개국 자료를 연구한 결과 실업률이 3% 상승할 때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은 4% 증가했다.
◆‘고통 덜한’ 실업 되려면
실업은 한국 사회가 상당 기간 안고 가야 할 고질병이 됐다.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산업구조 변화로 고용시장에서 일정 인원은 계속 이동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획기적 일자리 창출이 어렵다면 실업의 고통을 더는 것이 현실적 해결책이다.
성 연구위원은 “덴마크가 우리보다 근속연수가 짧음에도 행복한 사회인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며 “10인 이상 사업체 기준으로 근속기간 5년 미만 노동자 비율은 덴마크가 66%로 63.9%인 우리보다 더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실업이 불행으로 직결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일자리 간 격차가 굉장히 크기 때문”이라며 “가진 사람이 더 가지는 구조가 노동시장에 뿌리 깊게 구조화돼 격차를 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급 1000만원 대 200만원’의 사회 대신 상당수가 월 300만∼500만원을 받아 실업의 타격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한국형 노동유연화’를 시도할 때라고 조심스레 말한다. 기업 입맛에 맞는 ‘자르기만 쉬운’ 노동 유연화가 아닌, 재고용이 함께 원활해져 일자리에서 일자리로 사람이 흐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정규직 노동자만 혜택받는 근속연수에 따른 고임금 구조도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산별교섭 활성화는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줄이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유럽처럼 해당 산업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 각 기업의 임금을 협상하면 대기업만 살찌는 현상이 덜해진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업별로 전체 인력, 생산량 수준 등을 검토해서 산업 구조조정 방향을 분석하고 필요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며 “이런 구조조정으로 나온 사람은 다른 업종으로 어떻게 이동시킬지까지 고민하는 산업별 정책 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송은아·이희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