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사활 건 칩 헤게모니 전쟁… 한국 ‘새우등’ 터지나

신냉전 격전지 ‘반도체 시장’ / 美, 주도권 유지 위해 中 추격 제동 / 특허·기술력으로 화웨이 압박 나서 / 中 “반도체는 사람의 심장과 같다” / 170조원 쏟아부으며 적극적 지원 / 양국, 삼성전자·TSMC 줄서기 강요 / 韓, 유례없는 불확실성 속 선택 기로
“미·중 양국이 신(新)냉전으로 향하고 있다.” 최근 반도체 기술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대한 외신 분석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번진 냉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반도체 시장에서 재발하고 있다.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과 5G(5세대 이동통신) 분야의 핵심 기술로 미·중 양국은 반도체 기술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맞서고 있다. 양국 갈등으로 틈바구니에 낀 한국 반도체 산업은 유례없는 불확실성 속에 선택을 강요받는 처지에 놓였다.

 

◆격전지로 거듭나는 반도체 시장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기점으로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간 패권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현재까지 양국 갈등은 미국의 공세에 중국이 대응하는 양상이다. 19일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 지형변화와 시사점’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평균 점유율은 미국이 49%로 압도적이다. 한국 18%, 일본 13%, 유럽 9%, 대만 6%, 중국 4% 미만으로 뒤를 잇고 있다. 시장 점유율로 봤을 때 미국의 점유율이 절반에 가깝지만, 반도체 시장은 거대하면서도 복잡한 밸류체인(가치사슬)으로 엮여 있어 특정 국가 홀로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미국의 경우 퀄컴과 인텔, 애플로 대표되는 기업들이 팹리스(Fabless) 기술을 기반으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사실상 시중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PC와 스마트폰은 이들 기업이 설계한 반도체를 탑재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설계에 주력할 뿐 생산기술은 한국과 대만이 주도하고 있다. 파운드리(Foundry)로 불리는 위탁생산 시장은 대만의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가 각각 54.1%, 15.9%의 점유율로 시장의 7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파운드리는 공정이 미세할수록 반도체의 크기가 작아지고 성능이 높아지는데, 5나노 이하의 미세 공정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TSMC와 삼성전자 두 곳뿐이다. 인텔과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겸하는 종합반도체(IDM) 기업으로 분류된다.

중국은 반도체 시장의 큰손이지만 사실상 후발주자에 속한다. 중국의 대표 스마트폰 제조사인 화웨이는 자사 스마트폰에 탑재하기 위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설계하지만, 기술력은 퀄컴이나 애플, 삼성전자에 미치지 못한다. 시장에서는 성능면에서 애플의 A시리즈, 점유율면에서 퀄컴의 스냅드래곤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파운드리 역시 중국 내 기업인 SMIC가 있지만 기술력에서 TSMC나 삼성전자에 크게 뒤진다. 사실상 스마트폰의 성능을 좌우하는 AP는 화웨이 스스로 생산해서는 완제품의 경쟁력을 갖추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은 자국 기업이 가진 특허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화웨이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15일(현지시간) ‘미국의 소프트웨어와 기술을 활용한 외국 반도체 제조업체는 미국의 허가 없이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수출 규정 개정을 추진하겠다’며 화웨이를 겨냥한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미국이 지난해에는 스마트폰 소프트웨어 영역인 운영체제(OS)로 화웨이에 제재를 가했는데, 올해는 하드웨어인 반도체로 봉쇄에 가까운 조치를 취한 셈이다.

◆“악재 속에 정책적 뒷받침 절실”

미국은 화웨이를 압박하는 동시에 자국의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파운드리 기업 유치에 적극적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생산거점 성장을 견제하면서, 자국 내 반도체 자립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이런 이해관계 속에 TSMC나 삼성전자와 같은 제3국의 기업들은 미·중 갈등 속에 선택을 강요받는 처지에 놓였다.

특히 대만 기업들은 미·중 갈등에 따른 영향을 가장 크게 받고 있다. 대만에서는 파운드리 기업인 TSMC와 팹리스 기업 미디어텍이 반도체 산업을 이끌고 있다. TSMC는 사실상 미국의 손짓에 호응하며 미·중 갈등 속에 노선을 분명히 했다.

같은 대만 기업인 미디어텍은 TSMC와는 반대로 화웨이와 손잡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미디어텍은 퀄컴이나 애플에 비해 설계능력이 떨어지지만, 5G를 지원하는 AP를 설계하고 있다. AP부문 시장 점유율도 퀄컴(33.4%)에 이은 2위(24.6%) 규모로, 엑시노스를 설계하는 삼성전자(14.1%)나 자사 스마트폰에만 탑재하는 애플의 A시리즈(13.1%)보다 높다.

대만기업의 엇갈린 선택 속에 한국 반도체 산업은 이렇다 할 방향을 정하지 못한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결국 초격차의 기술력이 시장 주도권을 쥐게 한다는 전망이지만, 최근 미·중 모두 자국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에 적극적이다. 반도체 굴기를 내건 중국은 “반도체는 사람의 심장과 같다”며 정부가 나서 1조위안(약 170조원)을 지원했고, 미국도 연방정부 차원에서 1000억달러(약 120조원) 규모의 지원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반도체 시장의 경쟁이 미·중 양국 간 패권 갈등의 양상을 띠면서 기존보다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란 분석이다. 전경련은 관련 보고서를 통해 “반도체를 둘러싼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할 것”이라며 “최근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에 더해 일본 수출규제까지 여러 악재가 계속되는 가운데 세계시장 입지 수성을 위해 우리도 R&D, 세제혜택 지원 등의 정책적 뒷받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