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17일 윤도한(사진) 국민소통수석을 통해 내놓은 입장은 그간 문재인정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수준의 격앙된 반응을 담고 있다. 그간 북한의 원색적 비난에도 인내심을 유지했던 청와대의 고강도 대응은 북한의 개성연락사무소 폭파 등이 수위를 넘어섰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추가 도발을 막기 위한 견제구 성격도 있다.
북한이 군사 도발까지 감행하면 정부의 대북 기조가 수정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임동원·박재규·정세현·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박지원 전 국회의원과 오찬을 함께 하며 최근의 남북관계 관한 의견을 청취했다.
◆북한 도발에 강공으로 맞선 문재인정부
우리 정부의 비공식 대북 특사 제안을 북한이 공개한 점도 청와대의 강경 대응을 촉발한 요인이다.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가 경색된 국면에서도 특사 접촉를 통해 돌파구를 모색해왔다. 그러나 북측이 대북 특사 제안 사실을 공개하면서 남북접촉의 마지노선을 무너뜨리자 단호한 대응으로 선회했다는 분석이다. 역시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정상 궤도로 돌려놓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양면의 신호다.
국방부와 통일부도 이날 청와대의 입장 표명 이후 10분 간격으로 브리핑하며 북한의 막말에 가까운 담화와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예고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전동진 합참 작전부장(육군 소장)은 이날 북한이 사실상 9·19 군사합의 파기를 예고한 데 대해 북한이 만약 실행할 경우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그는 “우리 군은 오늘 북한군 총참모부에서 그간의 남북합의들과 2018년 판문점선언 및 9.19 군사합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각종 군사행동계획을 비준받겠다고 발표한 한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이와 함께 올해 4월 20일부터 전날까지 진행했던 강원도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 6·25 전사자 유해발굴 작업도 잠정 중단했다.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데 이어 군사행동까지 예고함에 따라 DMZ 우발적 충돌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어 장병의 안전 확보 차원에서 작업을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서호 통일부 차관도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오늘 북측이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발표를 통해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단을 군사지역화한다고 밝힌 점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북한이 하루 전날 개성 남북공동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과 관련해 미국, 중국 등 주요 국가와 긴밀히 소통하며 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정세 악화 방지를 위해 미국과 중국 중 주요 국가와 현 상황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고 각급에서 긴밀히 조율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재인정부, 대북 기조 전환하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소통과 협력’이라는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이 재조정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소통과 협력을 통해 남북 정상과 정부 사이에 신뢰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구동하려 했지만 북한은 지금까지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은 전면적인 대북정책 전환은 너무 성급한 전망이란 지적이 우세하다. 이날 나온 청와대의 대북 입장문도 북측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 입장문의 바닥엔 지난 15일 문 대통령이 6·15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이해 내놓은 제안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과거의 대결 시대로 돌아가선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한 문 대통령으로서는 실제 ‘소통과 협력’ 외에 선택할 수 있는 지점은 한정적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문재인정부가 대북정책을 전면 전환하기보다는 당분간 북한과 냉각기를 가지며 북한의 정세 판단능력이 정상상태로 돌아오길 기다린 뒤 남북 정상 간의 신뢰 회복을 위한 행동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현준·박병진·백소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