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수사 과정의 위증 교사 의혹 처리 방식을 두고 불거지고 있는 법무부와 대검찰청의 내홍이 봉합 국면에 접어들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 사건과 관련한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중요 참고인’ 별도 조사 지시를 큰 반발없이 수용해서다.
대검찰청은 21일 “한 전 총리 재판 관련 위증교사 의혹 진정 사건에 관해 검찰총장은 대검 인권부장으로 하여금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과 대검 감찰과가 자료를 공유하며 필요한 조사를 하도록 하라고 지휘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추 장관의 생각을 검찰의 업무처리에 반영하라는 취지의 지시”라며 “의혹 규명이 중요하니까 감찰부와 인권감독감관과 협력하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앞서 법무부가 지난 18일 한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 조사를 거부한 참고인을 대검 감찰부에서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대립은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았다. 이 사건을 대검 인권부에 맡겼던 윤 총장의 뜻과 상충돼서다. 윤 총장은 징계시효가 이미 끝나 감찰하더라도 징계할 수 없는 사안이고, 참고인이 검찰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라는 판단에서 대검 인권부를 거쳐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에 맡겼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에 대해 15년 만에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왔다.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조항(검찰청법 8조)을 근거로 추 장관이 한 전 총리 사건에 대해 윤 총장을 직접 지휘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미래통합당 조수진 의원이 이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를 골자로 한 검찰청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겠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수사지휘권 발동은 검찰총장에게 불명예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져 총장의 거취 표명으로 이어지곤 한다. 2005년 검찰이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려고 하자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은 김종빈 전 검찰총장에게 ‘불구속 수사하라’며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김 전 총장은 “비합리적인 부분까지 승복할 이유는 없다”며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의 수사방향에 대해 법무부 장관이 간섭해도 검찰총장이 보장된 임기를 포기하고 사임한다”며 “윤 총장이 지시 내린 것을 추 장관이 뒤엎고 재지시 내린 상황이어서 검찰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윤 총장이 이날 밤 타협안을 내놓으면서 양측이 강대강 충돌은 피할 전망이다. 두 사람은 22일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얼굴을 맞댄다. 이날 대면은 양측의 갈등이 숨 고르기에 접어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에서 주재하는 ‘6차 공정사회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추 장관과 윤 총장이 만난다.
문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에서 두 사람이 만난 건 지난 1월2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년 합동 인사회 이후 처음이다. 당시에는 추 장관 취임 직후여서 윤 총장과 특별한 마찰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후 추 장관은 1·8 검찰인사와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관련 공소장 비공개, 검찰 수사와 기소 분리 등 검찰을 비판하는 개혁안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윤 총장과 끊임없이 충돌했다. 이 때문에 윤 총장의 타협안에도 문 대통령의 22일 발언에 따라 윤 총장 사퇴 여론이 더 거세질 수 있다는 관측도 여전하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여권에서 윤 총장을 향해 ‘눈치가 없다’거나 ‘나 같으면 물러났겠다’는 말을 섞어가면서 거취를 압박하고 있다”며 “문 대통령이 추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거나 검찰을 비판하는 메시지가 나올 경우 윤 총장의 사퇴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필재·장혜진 기자 rus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