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표기 매우 미묘한 문제 / 영어 이외의 외국어에는 무심 / 인명·지명 등 이상한 표기 많아 / 올바른 언어교육 존중의 시작
프로 스포츠는 팬이 없다면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제 팬데믹 시대에서는 관중들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수익을 올리고,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묘안을 짜내는 중이라고 한다. 다행히도 ‘무관중 경기’가 진행되면서 광고 수익은 보장되는 한편, 프로야구 같은 경우 관중 입장에 대해 철저한 방역 대책을 동반해 조만간 시행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프로 스포츠를 좋아하는 글쓴이의 입장에서는 무관중 경기라도 진행되고, 매일 또는 매주 프로야구와 K리그, 그리고 멀리 유럽 축구 경기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서는 30년 만에 리버풀이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런데, 이 경기들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볼 때마다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는 외국인 선수 이름을 보니, 표기부터 이상한 것이 한두 명이 아니다. 쿠바에서 왔다는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 스페인어권 선수이니 미겔이 올바른 표기일 것이다. 산체스는 맞다 치지만, 곤잘레스? 정확한 표기는 곤살레스가 맞다.
참으로 별 것 아닌 듯도 하지만, 외국어 이름씨 표기나 발음 표기 부분은 미묘한 문제다. 외국어 한두 가지쯤은 구사해야 국제화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명목으로 유치원생부터 영어 교육을 강요했던 사회 분위기로 본다면, 오히려 영어 이외의 외국어는 무심해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외래어 표기에 관해서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매우 민감한 부분이지만, 의외의 부분에서 관대한 것처럼 보인다. 포르투갈 축구 감독의 이름이 조세 무링요인지 뮤리뉴인지, 왜 같은 표기 ‘Jose’가 호세와 조제, 그리고 주제가 혼용되는지 설명이 없다면 알 턱이 없다. 현행 인명 표기로 볼 때, 이 포르투갈 감독 이름의 한글 표기는 주제 무리뉴가 맞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기억할 것이다. 이것이 어느 순간 ‘세비야의 이발사’로 바뀌면서 음악 애호가들이 갑론을박 나뉘어 논쟁을 벌인 일도 있었다. 독자들의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단 스페인 남쪽 안달루시아의 도시 공식 이름은 세비야(Sevilla)가 맞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오페라를 작곡한 로시니는 이탈리아 사람이고, 이탈리아어 표기를 따라가는 발음으로는 ‘기존에 표기했던 ‘세빌리아(Seviglia)’가 원어에 가깝다.
하지만 정작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현지 방언을 들어보면 ‘세빌랴’ 또는 심지어 지역에 따라 ‘세비쟈’로 들리기도 한다. 여기서 어떤 것이 맞고 틀리다는 걸 따지자는 것은 아니고, 대신 이런 배경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현지 공식 표기가 ‘세비야’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는 다양성을 배경으로 갖가지 상황을 모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에는 정답이 없다.
또한 언어에서 발음의 중요성은 굳이 부연 설명할 이유도 없다. 인간과 인간이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때, 음소 사용의 오차로 서로 알아들을 수 없다면 언어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한 예로, 로마 알파벳을 사용하는 유럽 언어군은 오히려 미국식 영어 발음으로 읽는다면 의사소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차라리 글쓴이는 영어를 제외한 로마 알파벳 표기 언어군은 흔히 말하는 ‘콩글리쉬’로 읽을 것을 권한다. 모음군을 ‘아, 에, 이, 오, 우’로 읽을 때 오히려 원어에 더 가까운 발음이 된다. 미국의 지명 새너제이를 방문하면, 우리가 지금껏 배웠던 미국식 영어 발음보다 지역 특성상 라틴계 사람들이 원래 거주하며 붙인 발음 ‘산호세’가 더 의사소통에 편하다.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발음 표기의 오류지만, 언어 학습과 교육은 자그마한 것부터 고쳐야 한다. 인명이나 지명, 또는 그 무엇이든 상대의 이름씨를 제대로 불러주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미구엘이 아니라 미겔이다. 올바른 언어 교육과 발음은 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시작이다.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과의 교류를 다룬 영화 ‘콘택트’를 보면, 언어에 관한 명쾌한 정의가 대사 속에 등장한다.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