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하늘길 막혔는데… 마두로 “EU 대사 추방”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72시간 안에 우리나라 떠나라” / 민항기 운영 중단… ‘대사 추방’ 위한 특별기 편성 암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연합뉴스

“72시간 내에 베네수엘라에서 떠나라.”

 

미국과 유럽연합(EU) 국가 등 서방으로부터 ‘독재자’라는 비난을 듣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자국에 주재하는 EU 대사에게 29일(현지시간) 보낸 ‘최후통첩’의 내용이다. 외국 대사 추방은 통상 단교나 전쟁 선포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향후 베네수엘라와 EU의 관계가 격랑 속에 빠져들게 됐다.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마두로 대통령은 국영방송으로 생중계된 연설에서 자국 주재 이자벨 브릴랸트 페드로자 EU 대사를 향해 “72시간 이내에 우리나라를 떠나라”고 말했다.

 

이는 EU가 최근 마두로 정권 치하에서의 ‘민주주의 파괴’ 등을 이유로 제재를 강화한 것에 따른 보복 조치다. 앞서EU는 마두로 정권 인사 11명을 제재 리스트에 추가했다. 이 11명 중에는 지난 1월 국회의장에 선출된 루이스 파라 의원도 포함됐다.

 

파라 의원은 야권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견제할 목적에서 마두로 정권에 의해 ‘날치기’로 국회의장이 됐다. 과이도 국회의장은 서방 등 50여개 나라에서 마두로 대통령 대신 베네수엘라의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을 받는 인물이다.

 

이번 EU의 조치로 여행 금지와 자산 동결 등 제재를 받는 마두로 정권 인사는 총 36명으로 늘었다.

 

마두로 대통령은 EU를 겨냥해 “베네수엘라에 대한 유럽의 식민주의는 더는 안 된다”고 비난했다. “EU 대사가 떠난 뒤 베네수엘라는 EU와의 관계를 정리하게 될 것”이라고 단교를 암시하는 발언도 했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EU) 본부. 연합뉴스

문제는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베네수엘라의 민항기 운항이 금지된 상태라는 점이다.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하늘길을 사실상 막은 것이다. EU 대사가 72시간 이내에 베네수엘라를 떠나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이에 마두로 대통령은 선심을 쓰듯 “EU 대사에게는 베네수엘라를 떠날 항공편이 제공될 것”이라고 말해 EU 대사 ‘추방’을 위한 특별기 편성도 가능하다는 뜻을 밝혔다.

 

베네수엘라 사태는 2013년부터 집권 중인 마두로 대통령이 독재정치를 강화하더니 2018년 대선에서 부정선거 파문 끝에 재선에 성공하며 비롯했다. 이후 미국과 EU 등 서방이 제재에 나선 반면 러시아는 마두로 정권을 옹호하면서 사실상 ‘내전’ 양상으로 비화했다. 현재 미국 등은 마두로 정권 대신 과이도 국회의장을 베네수엘라의 정통성 있는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