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상대로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2일 전격 발동하면서 양측 간 긴장감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추 장관은 '결단'을 예고한 데 이어 이날 수사의 적절성을 따지는 전문수사자문단 소집 절차 중단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 대한 독립성 보장을 지휘했다.
수사팀의 반대에도 전문자문단 소집을 강행하던 윤 총장의 '마이웨이'에 제동이 걸린 셈이어서 윤 총장의 지휘 수용 여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일단 윤 총장은 3일 예정된 전문수사자문단은 소집하지 않기로 했지만, 수용여부에 대해선 아직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윤 총장의 수용 여부와 무관하게 검찰총장의 거취 문제로 확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추 장관이 2일 윤 총장을 상대로 전문자문단 소집 중단과 수사 독립성 보장을 지시하면서 다음 날 예정됐던 전문자문단 소집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이날 오전까지 윤 총장이 전문자문단 소집을 강행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대검이 그간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의 이의제기에도 이미 추천위원을 선정한 이상 소집을 중단할 뚜렷한 명분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대검은 전날 서울중앙지검에 검사장 정례보고를 서면으로 대체하라고 지시한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었다. 서면보고 지시는 전문자문단 소집에 이의제기해온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더 이상의 협의는 불필요하다고 윤 총장이 판단한 결과로 해석됐다.
'검언유착' 사건 피의자인 이모 기자 측도 전문자문단 소집에 대비해 대검에 이미 2건의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추 장관의 전격적인 수사지휘로 사실상 전문자문단 소집은 어려워졌다.
전문자문단 소집을 강행할 경우 검찰총장이 법으로 보장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무력화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추 장관의 전격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이번 사건의 파문이 윤 총장의 거취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과 상반된 방향으로 수사를 전환하고자 할 때 발동됐다. 검찰이 장관의 수사 지휘권 발동을 매우 '불명예스러운 일'로 받아들이는 건 이 때문이다.
2005년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은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수사 지휘권 발동에 "검찰의 독립성이 훼손됐다"며 사퇴하기도 했다.
윤 총장에 대한 여권의 압박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윤 총장의 거취 고민을 자극하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자문단이 대검 측 추천위원만으로 구성되면서 회의 결과와 무관하게 윤 총장에게 '악수'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전문자문단이 수사팀의 손을 들어주면 윤 총장의 리더십 타격이 불가피하고 대검 측에 유리한 권고를 해도 공정성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결국 추 장관이 15년 만에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는 명분을 만들어줬다는 분석이다.
윤 총장이 추 장관의 수사지휘를 수용하면 검언유착 수사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모 기자와 공모 의혹을 받는 한동훈 검사장은 수사팀으로부터 전날 소환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지만 전문자문단 회의 결과를 지켜본 뒤 출석하겠다며 출석을 거부했다.
대검 측의 무리한 전문자문단 소집 추진은 전날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집중 질타 대상이 됐다.
윤 총장이 이 사건의 수사 지휘를 대검 부장회의에 일임해놓고 직권으로 전문자문단 소집을 결정한 것에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여권의 지적이 쏟아졌다.
대검 예규에는 수사 과정에서 다양한 이견이 있을 때 자문할 수 있는 협의체로 대검 부장회의, 지방검찰청 부장검사 회의, 전문수사자문단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검언유착 사건과 관련해 대검 부장회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윤 총장은 대검 부장회의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전문수사자문단을 소집했다. 한 사건에 대해 2개의 협의체가 동시 가동되는 것은 비정상적이라는 것이 검찰 안팎의 지적이다.
대검 측은 전문자문단 소집은 윤 총장의 직권 사항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대검 부장회의의 논의가 수사팀에 유리하게 기울자 윤 총장이 서둘러 전문자문단을 예고 없이 소집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실제로 지난 19일 전문자문단 소집이 결정되고 난 뒤 일부 대검 부장들은 부장회의 때도 전혀 논의되지 않은 사안이라며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결국 대검 부장 3명은 지난달 29일 대검 측의 추천위원만으로 자문단을 구성할 때 '전문자문단 소집 결정에 관여한 바 없다'며 선정 투표에서 빠졌다.
사건 수사에 이미 관여한 형사부·감찰부·과학수사부 부장도 공정성 차원에서 위원 선정에서 빠지면서 대검 측의 추천위원만 반영된 전문자문단 위원 구성은 과장들의 주도로 진행됐다.
대검 부장회의 당시에도 예고 없이 안건이 변경돼 효율적인 논의를 방해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19일 회의 때 당초 안건은 채널A 이모 기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방침이었는데 일주일 뒤 한 검사장에 대한 공소제기 여부까지 안건에 포함됐다는 것이다.
추 장관은 이에 대해 "주범으로 지목된 사람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다 공모 여부 증거가 나오면 공모자에 대해 판단해도 늦지 않은데 한꺼번에 판단하라고 하니 이견이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수사팀의 항명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통상적인 대검의 수사 지휘를 거부하면서 수사를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방침까지 세워놓고서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전문자문단 소집에 반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대검 측은 "구속영장 청구 방침까지 대검에 보고했으면서 이제 와서 실체 진실과 사실관계가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편 민주당은 2일 윤 총장을 겨냥해 '건달 두목' 등 거친 표현을 동원해 총공세를 펼쳤다.
추 장관이 전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윤 총장을 겨냥해 "더 지켜보기 어렵다면 결단할 때 결단하겠다"고 발언한 뒤 압박의 수위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