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배우라고 말하고 다닙니다. 요즘엔 스스로도 배우라 믿고 있어요.”
국악인 이봉근(37)은 연기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지난 1일 개봉해 호평을 받고 있는 영화 ‘소리꾼’에서 배우로 변신해 국악인 겸 배우란 수식어를 얻게 됐다.
학규가 소리로 청중을 다 울려야만 탐관오리로부터 풀려날 수 있는 장면을 찍을 땐 실제로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함께 울었다. 당시 현장 분위기, 감동이 화면에 오롯이 담겼다.
“심 봉사 눈 뜨는 대목이란 심청가 소리인데 8분간 원 테이크로 한 번에 찍었어요. 영화 촬영 이후에 그 부분을 공연에서 몇 번 부른 적 있거든요. 그 느낌이 나오기 참 어렵더라고요. 현장 힘도 있었고, 학규란 인물이 득음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또 다른 학규, 심 봉사 역할을 맡은 송철호 배우와 그 장면을 위해 정말 많은 얘기를 했죠.”
그는 “사람, 사람의 관계에 집중했고 많이 성장했다”고 돌아봤다. 무엇보다 표현이 한결 자유로워졌다. 그는 “배우란 감정과 생각을 하나하나 다 표현하는 직업”이라고 했다.
판소리는 중학교 2학년 때 시작했다. 시작은 늦었지만 습득 속도가 빨랐다. 그 전엔 서예가 아버지의 영향으로 서예를 하다가 왼손잡이에 악필이라 접었다.
“흔히들 목소리가 허스키하면 판소리와 어울리지 않냐 하시는데 정반대입니다. 판소리를 하면 목에 상처가 워낙 많이 나서 목이 튼튼해야만 할 수 있어요. 다행히 전 변성기가 지나 시작해 성대에 무리가 가지 않았고, 머리가 좀 커서 요령도 생기더라고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매일 새벽 무덤가에서 소리 연습을 하고 담력도 길렀다. 그는 “춘향가 귀곡성(귀신 울음소리)을 익히려면 무덤가에서 연습해야 한다는 걸 아버지가 책에서 보시곤 새벽 5시면 무덤가로 보내셨다”면서 “나중엔 졸리니 무덤 옆에서 자다 아버지한테 걸리기도 했다”고 웃었다. 그의 바람은 “영화를 통해 국악의 대중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서편제’ 때처럼 전통 음악 붐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저도 서편제 덕분에 판소리를 전공하게 됐거든요. 요즘 들어 젊은 소리꾼들이 활발히 활동하는데 조금 더 부흥했으면 좋겠습니다. ‘소리꾼’을 통해 판소리 매력을 느끼게 되실 겁니다. 제가 2000년대 초부터 (국악과 현대 음악을 접목한) 크로스오버 공연을 해 왔는데 초반엔 왜 그렇게 하냐, 왜 판소리를 변질시키냐고 원로 선생님들께 혼났어요. 지금은 오히려 칭찬해 주시죠. 예전엔 전통 원형을 대중화에 맞게 변형하자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원형 그대로 보여 드릴 수 있게 포장하는 음악적 효과를 고민하고 있어요. 지난해 낸 크로스오버 재즈 음반 ‘적벽’을 들어 보시면 판소리 원형을 그대로 따르는 걸 아실 수 있습니다.”
판소리처럼 연기도 빨리 시작한 건 아니지만 그는 학창 시절 그랬던 것처럼 배우의 길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그러면서도 묵묵히 뚜벅뚜벅 걸어갈 듯싶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