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 밝혀줘"…경찰, 故 최숙현 가혹행위 수사 제대로 하지 않았다

누리꾼들 "제대로 된 수사와 강한 처벌로 체육계 폭력 끊어내야"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국가대표 출신의 최숙현 선수가 지난달 26일 부산의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은 고인의 사망 후 고인이 전 소속팀 경주시청 감독과 팀닥터, 선배로부터 모욕·폭행을 당하는 내용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사진은 고 최숙현 선수의 유골함. 최숙현 선수 가족 제공

경찰이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23·여) 선수 가혹행위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최 선수의 지인과 유족들은 경찰의 사건 수사 당시 최 선수가 오히려 죄인 취급 등을 당해 심적으로 많이 괴로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북 경주경찰서 관계자는 "최 선수 사건에 대한 수사는 경주지청으로 부터 사건을 이첩 받아 진행했다"며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 당시 어려움이 있었다"고 3일 밝혔다.

 

경찰은 경주지청으로 부터 지난 3월11일 최 선수 가혹행위에 대한 사건을 이첩받았다.

 

이후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관련자들이 뉴질랜드에서 입국한 뒤 2주나 지나서야 조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경주경찰서 관계자는 "사건을 이첩받은 후 수사에 착수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관련자들을 바로 불러 조사를 할 수 없었다"며 "현재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경찰 조사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알려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최 선수의 한 지인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경찰이 최 선수의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인 A씨는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숙현이가 그런(가혹행위) 상황을 알릴 수 없었던 이유는 가해자들의 보복을 매우 두려워했다"며 "오랜 기간 괴롭힘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숙현이가 고통보다 억울함이 앞섰기 때문에 부모님과 결정을 통해 굉장히 어렵게 용기를 냈다"며 "고인이 경찰, 스포츠인권센터를 찾은 것은 엄청난 용기였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A씨는 "숙현이가 경찰에 문제제기했던 그 상황 속에서 되게 힘들어했다"며 "그 이유를 기억한다. 너무나도 실망을 했었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부터 오히려 자기가 되게 죄인이 된 듯한 느낌을 계속 받았다고, 오히려 너무 힘들어 했었다"며 "경찰에 가서 진술하고 조사 받는 과정에서 숙현이가 제기한 그런 문제들이 별일이 아닌 듯한 취급을 받았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경찰이 최 선수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경찰관이 고인을) '별것도 아닌 일, 운동선수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 아닌가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 했다)"라는 것이다.

 

최 선수의 유족도 경찰과 대한체육회 등의 미온적인 태도에 울분을 토했다.

 

유족은 올해 초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은 것은 물론 경찰 형사고소와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신고, 철인3종협회 진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가족에게 힘이 돼 준 곳은 없었다.

 

최 선수의 아버지는 "수사기관에서도 운동선수 폭행은 다반사다"며 "벌금형 정도 나올 거고 처벌수위가 약하다고 숙현이에게 계속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또 "숙현이가 이 과정에서 많이 힘들어했다"며 "결국 변호사를 선임하자고 하더라"고 부연했다.

 

최 선수에 대한 사건은 현재 대구지검에서 수사 중이다.

 

대구지검은 최 선수 사건을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양선순)에 배당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최 선수의 사건을 알게 된 시민들은 가해자 신상 공개와 강력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누리꾼들은 "가해자뿐만 아니라 대한체육회 등 관련 기관까지 전부 수사해야 한다", "애초에 죽음을 막을 수 있었는데 묵인한 사람들도 다 가해자", "제대로 된 수사와 강한 처벌로 체육계 폭력 끊어내야 한다" 등 강력처벌을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일 "트라이애슬론 고 최숙현 선수 사건과 관련해 선수 출신인 최윤희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나서서 전반적인 스포츠 인권 문제를 챙기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최 선수가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폭력을 신고한 날이 4월8일이었는데도 제대로 조치되지 않아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난 것은 정말 문제이다"며 "향후 스포츠 인권과 관련한 일이 재발하지 않게 철저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선수는 지난달 26일 자신의 어머니에게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부산의 숙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최 선수는 올해 경주시청을 떠나 부산시체육회에 입단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