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몸 / 이토 아사 / 김경원 / 현암사 / 1만6000원
신체와 장애의 문제를 깊이 연구해온 저자 일본인 이토 아사는 장애인 11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를 토대로 신체장애와 기억의 연관성을 추적한다. 한 사람이 하나의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저자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한 사람의 몸이 마치 여러 개로 중첩된 듯 기능하는 독특한 현상을 발견해내고 이를 ‘하이브리드 신체’ 혹은 ‘몸의 복수화’라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사람의 새겨진 기억이 어떻게 신체를 작동시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책에 따르면 후천적 장애인의 몸에는 종종 ‘장애를 입기 전 몸의 기억’과 ‘현재의 몸’이 겹쳐지면서, 상식으로 생각하면 불가사의해 보이는 갖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예를 들면 성인이 되면서 시력을 완전히 잃은 시각장애인 레나씨는 말하면서 언제나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단지 필기구를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금 전에 글씨를 썼던 곳으로 되돌아가 강조하기 위해 동그라미를 치거나 밑줄도 긋는다. 이전에 써놓은 글자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메모행위가 영상처럼 기록되어 머릿속에 이미지로 저장되었음을 의미한다. 레나씨는 손의 운동 기억을 단지 재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종이를 ‘보고’ 있는 것이다.
박태해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