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을 밥보다 많이 먹어”… 故 최숙현에겐 ‘괴롭힘 3종 경기’였다

최숙현 선수 죽음 내몬 가해자 6일 징계 결정 / 감독·팀닥터·선배에 집단 괴롭힘 / 동료들도 6일 회견… 피해 증언 / 팀닥터 상습 성추행 의혹도 제기 / “욕을 밥보다 많이 먹어… 왜 살까” / 최, 입단 첫 해 일지부터 고통 호소
고 최숙현 선수의 유골함. 뉴시스

‘철인 3종 경기’가 아닌 ‘괴롭힘 3종 경기’였다. 최숙현 선수를 죽음으로 내몬 괴롭힘은 전 소속팀 경주시청 감독과 ‘팀닥터’로 불렸던 무자격 운동지도사, 그리고 이에 가담한 선배 등의 집단 가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부인과 잠적, 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 공분을 사고 있다. 이런 가운데 6일 열리는 대한철인3종경기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어떤 징계가 내려질지 관심이 쏠린다.

5일 그동안 공개된 녹취록 등에 따르면 팀닥터로 불리는 안모씨가 최 선수에 대한 폭행을 주도하고 김모 감독은 이를 방조한 것처럼 보였다. 이를 근거로 김 감독은 지난 2일 경주시체육회 인사위원회에서 자신의 폭행가담을 부인했다. 이러자 그동안 침묵했던 또 다른 피해자들인 최 선수의 동료들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 이들은 “감독이 10년 전부터 폭행을 일삼았다”며 6일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밝혔다.

 


팀닥터로 불리며 경주시청 선수단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안씨는 잠적한 상태다. 당초 물리치료사로 알려졌던 그는 관련 자격증조차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선수들로부터 반강제적으로 걷은 치료비 명목의 돈으로 임금을 받는 등 공식 채용된 직원이 아니라 인사위원회에 소환조차 되지 않고 자취를 감췄다.



안씨가 평소 선수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는 새로운 주장도 제기됐다. 경주시체육회가 최 선수 사망 진상파악을 위해 소속 트라이애슬론 선수 6명을 대상으로 진술서를 받았고, 이 중 일부 선수가 안씨가 평소 선수들에게 좋아한다거나 오빠같이 생각하라며 목을 감고 포옹을 해 모욕감과 함께 수치심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또 선수들은 안씨로부터 감독과 함께 있지 않을 때만 골라 수시로 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들은 안씨가 미국에서 의사 면허를 땄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등 여러 가지 진술을 했지만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안씨가 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팀의 간판인 장모 선수의 비호가 있었다는 것이 주변의 이야기다. 국내외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그는 선수단 숙소 건물의 소유주로 감독도 함부로 못 하는 팀의 실세였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이런 장 선수가 10년 전 안씨를 팀에 불러들였고 장 선수 역시 최 선수 폭행의 가해자라고 유족들이 주장하고 있지만 그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경북 경주시 황성동에 있는 경주시체육회 사무실에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감독(왼쪽)이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서 관심은 스포츠공정위 결과에 쏠린다. 이미 경주시체육회는 물론 협회와 대한체육회, 경찰 등 유관단체들의 늦은 대응이 최 선수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이어졌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어 뒤늦게나마 추가 피해자를 막을 매서운 징계의 칼을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스포츠공정위 규정은 폭력을 행사한 지도자, 선수, 심판, 임원은 그 수위가 중대하다고 판단하면 ‘3년 이상의 출전정지, 3년 이상의 자격정지 또는 영구제명’ 조처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과연 최고 수위인 영구제명 조처가 내려질지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경주시체육회 관계자는 이날 “법률 검토를 거쳐 8일이나 9일쯤 안씨를 고발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안씨는 팀 감독, 선배 선수 2명과 함께 최 선수가 폭행 가해자로 고소한 4명 중 1명이다. 이날 한 언론을 통해 알려진 2017년 2월 뉴질랜드 전지훈련일지에도 최 선수가 감당해야 했던 고통이 담겼다. 최 선수는 같은 달 8일 훈련일지에 “욕을 밥보다 많이 먹으니 배가 터질 것 같다. 뇌도 같이”라고 썼으며 훈련일지 뒷면에 “왜 살까, 죽을까. 뉴질랜드에서 죽으면 어떻게 되지”라고 메모를 남겨 입단 첫해부터 폭행에 시달린 것으로 드러났다.

 

송용준 기자, 경주=이영균 기자 eidy01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