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 7시간 만에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이 10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날 오전 0시 1분께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박 시장은 경찰의 현장감식 절차를 거쳐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진 뒤 오전 3시 30분께 영안실에 안치됐다.
박 시장이 도착하기 전인 오전 3시께부터 그의 지인과 지지자로 추정되는 이들이 응급의료센터 문 앞에 서서 이송차량을 기다리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이들 중 일부는 차량이 센터 앞에 도착하자 오열하며 "일어나라 박원순", "사랑한다 박원순", "미안하다 박원순" 등을 외쳤다.
경찰은 추후 유족과 협의해 시신 부검 여부를 결정하는 한편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박 시장에 대한 수색은 이날 오후 5시 17분께 그의 딸이 "4∼5시간 전에 아버지가 유언 같은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다"고 112에 신고한 이후 이뤄졌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경찰 635명, 소방 138명 등 총 773명의 인력과 야간 열 감지기가 장착된 드론 6대, 수색견 9마리 등을 동원해 수색한 끝에 약 7시간 만에 박 시장의 시신을 발견했다.
한편 박 시장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정치권은 10일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놓고 대치를 이어가던 여야는 일단 정치 일정을 멈추고 일제히 추모 분위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지도부는 박 시장 실종 소식이 알려진 뒤 전날 밤늦게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민주당 지도부는 박 시장 실종 상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국 최대 현안인 부동산 문제 해결에 정권 차원의 명운을 걸었던 민주당은 이날 오전 7시30분으로 예정됐던 부동산 종합대책 논의를 위한 당정협의를 취소했다. 민주당 소속인 박 시장의 생사가 불투명해짐에 따라 관련 상황 대응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됐다.
당초 이번 당정협의에서 정부와 민주당은 부동산 종합대책의 최종안을 확정하고 오전 중 정부 합동 형식으로 그 내용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다만 민주당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인상을 골자로 한 정부의 부동산 종합대책은 예정대로 오전 중 발표하고 당 차원에서 임대차보호법과 관련한 브리핑을 할 예정이었지만 박 시장의 사망이 확인됨에 따라 관련 일정을 재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와 충청권 예산정책협의회, 김태년 원내대표의 코로나19 백신 개발현황 점검 현장방문 등의 일정을 예정하고 있었지만 중대 사태가 벌어진 만큼 일부 일정을 취소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당 대표 출마 선언 이후 연일 언론 인터뷰를 이어오던 이낙연 의원도 당내 상황을 감안해 이날 인터뷰를 모두 취소한 상태다.
특히 박 시장은 당내 유력 대권주자 중 한명이었던 데다 그를 둘러싼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의혹이 제기되면서 민주당에 던져질 충격파는 적지 않아 보인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박 시장의 행적을 놓고 각종 추측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박 시장이 전직 비서에 대해 지속적인 성추행을 했고 경찰에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내용이 보도됐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비서에 대한 강제추행으로 사퇴한 만큼 박 시장의 미투가 확인되면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 내년 4월 서울과 부산에서 모두 재보궐 선거를 치르게 될 수도 있다.
앞서 대권주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수행비서에 대한 성폭행 혐의로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6개월 형을 받았다.
이런 가운데 3선의 서울시장으로 유력 대권주자 중 한 명인 박 시장이 사망함에 따라 여권의 대선 준비에도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김경수 경남지사도 재판을 받는 상태다.
당내에서 박 시장과 친분이 두터워 이른바 '박원순계'로 분류된 의원들은 비통함에 휩싸인 분위기다.
이들은 박 시장의 실종 소식이 전해진 뒤 무사귀환을 바라며 사태를 예의주시했지만 끝내 주검으로 발견되면서 큰 슬픔에 잠긴 것으로 전해졌다.
무엇보다 박 시장이 전날까지만 해도 이해찬 대표와 비공개로 만나 부동산 현안을 논의하고 평소처럼 시정 활동을 이어갔다는 점에서 충격이 더욱 크다는 전언이다.
박 시장과 가까운 한 민주당 의원은 그의 실종 소식이 전해진 뒤 통화에서 "최근까지 만났는데 아무런 (특이) 상황은 없었다"며 "박 시장을 모셨던 분들과 상황 파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시에서 공직을 지내며 박 시장과 가까이 지낸 다른 의원도 "아직 명확하게 (상황을) 모르겠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날이 밝는 대로 박 시장의 장례 절차와 향후 정치 일정 등에 대한 내부 논의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김두관 의원은 박 시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추모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미래통합당은 박 시장 사망과 관련해 현재까지 공식적인 입장은 내놓지 않고 사태를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다만 국민들이 받을 충격과 역풍을 고려해 여권과의 대립각은 잠시 접어두고 추모 분위기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한다.
통합당은 박 시장의 실종 소식이 알려지자 사태의 중대성을 감안해 소속 의원들에게 신중한 언행을 당부하기도 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전날 저녁 의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여러모로 엄중한 시국"이라며 "모쪼록 우리 의원님들께서는 언행에 유념해 주시기를 각별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