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숨진 채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인이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그가 실종되기 전날 전직 여비서에게 성추행 등 혐의로 피소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곤욕을 치르게 됐다. 박 시장의 소속 정당인 민주당은 앞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 등 광역단체장들 외에도 소속 국회의원과 총선 영입인재까지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폭로에 휩싸인 바 있기 때문이다.
경찰 등에 따르면 2017년부터 박 시장의 비서로 일했던 A(여)씨는 지난 8일 변호사와 함께 서울경찰청을 찾아 박 시장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했다. A씨는 이날 새벽까지 고소인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SBS는 전날 “A씨가 경찰 조사에서 ‘비서 일을 시작한 2017년 이후 성추행이 이어져왔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A씨는 또 ‘신체 접촉 외에 박 시장이 휴대전화 메신저(텔레그램)를 통해 개인적인 사진을 여러 차례 보내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피해자가 본인 외에 더 많으며, 박 시장이 두려워 아무도 신고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고도 털어놨다고 한다. A씨는 박 시장과 나눈 메신저 대화내용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같은 날 MBC 역시 ‘피해자(A씨) 본인이 경찰에 직접 고소장을 제출했으며, 고소장에는 성추행 피해 정황을 상세히 기술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이어 ‘경찰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어제(8일) 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에게 해당 사안을 긴급 보고했다’고 전했다.
다만 경찰은 A씨가 피해 건수 등 일부 피해 사실에 대해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 사실관계 파악이 우선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같은 보도 내용들에 대해서는 일체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시 역시 박 시장을 겨냥한 미투 의혹에 대해 “(박 시장의) 피소 사실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박 시장이 실종 13시간여만인 이날 0시1분 서울 북악산 숙정문 인근 성곽 옆 산길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고소 건은 ‘공소권 없음’ 처분으로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타살 혐의점이 없다고 밝혔다. 공소권 없음은 수사와 처벌의 대상이 사라진 만큼, 더 이상의 형사절차 진행이 무의미하다는 취지에서 내려지는 처분이다.
경찰은 조만간 검찰에 이번 사건 경과를 설명한 뒤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려줄 것을 건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A씨가 기자회견 등을 통해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폭로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수사기관의 수사나 재판 등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는 상황이라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현 정부 들어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이 성추문에 연루된 건 2018년 3월 안희정 전 지사와 올해 4월 오거돈 전 시장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 4월23일 오 전 시장은 “저는 최근 한 여성 공무원을 5분간 면담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이 있었다”며 전격 사퇴했다. 당시 민주당 지도부는 오 전 시장의 발표 전까지 해당 내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고 했으나, 부산시가 4월 초부터 피해자와 오 전시장의 사퇴 시점을 조율해왔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일었다. 안 전 지사는 2018년 비서의 성폭행 폭로로 자리에서 물러났고,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 6개월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그는 최근 모친상을 치르기도 했다.
민주당 소속 민병두 전 의원도 안 전 지사와 비슷한 시기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회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가 당의 만류로 사퇴 의사를 철회한 바 있다. 같은 시기 정봉주 전 의원도 과거 대학생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며 구설수에 올랐다. 두 사람은 지난 총선에서 결국 공천을 받지 못했다. 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야심차게’ 영입했던 원종건씨는 지난 2월 전 여자친구의 미투 폭로가 나오면서 결국 당을 떠났다.
이처럼 유독 민주당 인사들의 성추문이 불거지는 경우가 잇따르자 온라인 공간 곳곳에서는 “더불어미투당이냐”라거나 “이 정도면 당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전수조사라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 같은 의견이 빗발치고 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