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뜬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에 문재인 대통령이 조화를 보냈다. 고인이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등 혐의로 고소를 당한 것과 관련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모친상 때에 이어 여성계가 발끈하고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박 시장의 경우는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안 전 지사와 달리 수사나 재판으로 사실관계가 드러난 상황이 아니라서 분위기가 사뭇 다르단 평가도 있다.
10일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날 박 시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대통령 명의의 조화를 보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강기정 정무수석은 박 시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려진 바 없으나, 박 시장과 사법연수원 동기(12기)로 친분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이날 조화를 보낸 것을 놓고 일각에서는 안 전 지사의 모친상 때와 같은 갈등이 되풀이되는 것 아니냔 전망도 나온다. 앞서 안 전 지사는 지난 4일 모친을 여의었는데, 문 대통령을 비롯한 정관계 인사들이 보낸 조화·조기가 빈소에 빼곡히 들어차 여성계가 반발한 바 있다.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정의당은 조화를 보낸 문 대통령을 향해 “정치인으로서 무책임한 판단”이라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아직까진 여성계나 정치권으로부터 별다른 논평이나 성명이 나오진 않았으나 박 시장의 빈소에 각계의 조화와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불편하게 여기는 시선도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의당의 태도는 안 전 지사 모친상 때와는 180도 다르다. 이날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망연자실할 따름”이라며 안타까워했고, 같은 당 김종철 선임대변인도 논평에서 애도를 표했다.
지도부와 달리 반발하고 나선 일부 인사도 있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고인(박 시장)께서 얼마나 훌륭히 살아오셨는지 다시금 확인한다”면서도 “그러나 저는 ‘당신’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박 시장에 대한 조문을 가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여기서 당신은 박 시장을 고소한 전직 서울시장 비서를 가리키는 말로 풀이된다. 류 의원은 2차 가해와 신상털이에 대한 우려도 늘어놨다.
온라인 공간에서도 애도 분위기와 불편해하는 시각이 교차한다. 주로 친여 성향의 누리꾼들 사이에선 박 시장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의견이 많은 반면, 여성 누리꾼 중에서는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박 시장에 대해 애도 물결이 이는 상황을 못마땅해하는 이들이 적잖다. 다만 박 시장의 혐의가 수사·재판 등으로 밝혀진 게 아니라 안 전 지사 모친상 때에 비하면 다소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다.
박 시장의 딸의 실종 신고로 대대적인 수색에 나선 경찰은 이날 0시1분 서울 북악산 모처에서 숨진 박 시장을 발견했다. 박 시장은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는 내용의 유언장을 남겼다. 그러나 자신을 고소한 여성에 대한 사과 등 언급은 없어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