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시스템 느슨… ‘규정대로’해도 피해자에 도움 안 돼 ['체육계 폭력' 악습 끊자]

<3회> 전문성 책임감 없는 보호시스템 / 체육회 인권부서장 재임 1년 미만 / 문체부 체육담당 1∼2년이면 이동 / 전문성 부족·책임감 결여 이어져 / 문체부 ‘스포츠윤리센터’ 8월 출범 / 특사경 도입, 수사권 행사도 고려 / 인권위도 독립조직 설치 움직임 / 윤리센터와 충돌 우려 목소리도
대한체육회와 문화관광체육부 청사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고 최숙현 선수는 자신을 괴롭혀 온 가해자들로부터 벗어나고자 갖은 노력을 했다. 소속팀을 관리하던 경주시청과 경주시체육회부터 대한철인3종협회, 대한체육회의 스포츠인권센터와 클린스포츠센터, 국가인권위원회, 그리고 검찰과 경찰까지 그가 도움을 요청한 기관들만 나열해도 숨이 가쁘다.

 

하지만 4개월 동안 어느 곳도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못했다. 체육계 폭력에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여러 보호 시스템이 이미 만들어져 있지만 실질적인 해결책을 처방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체육계 폭력의 특수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전문성을 갖춘 인재 부족과 이로 인한 책임감 결여를 그 원인으로 꼽는다.

 

◆잦은 인사교체 전문성 부재

 

우선 대한체육회부터 선수 인권을 등한시하고 있음은 인사를 통해서 드러난다. 2014년 선수권익부라는 이름으로 체육회 내에 선수 인권 담당 부서가 생긴 이래 6년 동안 책임자만 무려 8명이나 거쳐가 평균 재임 기관이 1년도 채 안 된다. 당연히 전문성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잠시 스쳐 가는 자리이기에 자신의 재임 기간 큰 사건이 없으면 다행일 뿐이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도 마찬가지다. 문체부는 예술부터 관광, 언론, 종교에 체육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관장한다. 특히 다른 분야와 달리 체육은 특수성이 더 강해 전문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체육 담당 핵심 실무자가 순환보직 원칙에 따라 1∼2년이면 바뀌는 것이 현실이다. 이전까지 전혀 다른 업무를 맡던 사람이 체육 분야로 건너와 업무 파악에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하고 제대로 일을 할 만할 때쯤 또 다른 부서로 이동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 같은 여건은 이번 최 선수 사건 때 문체부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이유의 하나로 지적된다.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탓에 하급 기관에 책임을 떠넘기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야 대책 마련에 나선다며 분주하다. 체육인 출신인 최윤희 제2차관이 실무자의 전문성 부족을 채워줘야 하지만 부임 후 체육계 현안에 대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지 않아 아쉽다는 목소리도 높다.

선수 인권 보호에 앞장 서야 할 두 기관이 이번 고 최숙현 선수 사건에는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책임감 부재가 만든 ‘규정대로’

 

전문성이 부족한 책임자가 있다면 그 업무에 대한 책임감도 높을 리 없다. 실무자들 역시 능동적으로 일하기 힘든 분위기가 조성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대한체육회 스포츠클린센터의 경우 전문성 확보를 위해 전직 경찰 출신인 전문조사원 4명을 두고 있지만 이들은 계약직 신분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이들은 최근 최 선수 사건 뒤 졸속 대응이라는 비난이 거세지면서 부담을 크게 느낀 듯 모두 그만두겠다고 나서 체육회가 간신히 말리고서야 업무에 복귀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최 선수 사건의 경우에도 조사관은 정해진 규정과 절차대로 자기 일을 했다. 규정상 접수된 사건은 6개월 안에 결과를 처리하면 된다. 최 선수가 정식 신고한 것이 4월8일이기에 조사관의 입장에서는 시간상으로 여유가 있었다. 더군다나 최 선수의 경우 하필이면 경북지역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가장 심각했던 시기와 겹쳐 직접 방문조사나 소환조사가 쉽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김규봉 경주시청 감독과 정모 주장은 선수들을 종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가짜 진술서를 작성하게 하는 등 조직적으로 정황 조작에 나섰고 조사관은 최 선수에게 전화해 이를 반박할 증거를 수집해 제출해 달라고 했다. 이 역시 선수를 돕기 위한 조언이었다. 스포츠인권센터의 폭력 문제 신고 가이드라인에도 피해 선수가 신고에 앞서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고 적시해 놓고 있다. 조사관으로서도 증거를 확보할 여력이나 권한이 없는 상황에서 선수에게 이를 요구하는 것 역시 규정대로다.

 

하지만 이 ‘규정대로’한 조치는 절박한 최 선수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는 조사관의 문제라기보다는 선수 보호 시스템의 구조적인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다. 절박한 선수에게는 좀 더 빠르고 실질적이면서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시스템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스포츠윤리센터 선수 인권 보호 대안 될까

 

이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실상 뒷짐을 지고 있던 문체부에 선수 인권 문제를 직접 관장할 기구가 생긴다. 오는 8월 체육계 비리 및 인권침해 문제를 전담하는 독립기구인 스포츠윤리센터를 출범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미 25명의 신규인력을 채용했다.

 

특히 지난 7일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수사당국의 지휘를 받아 수사경찰의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사법경찰제 운영 등의 계획을 갖고 있다”며 윤리센터의 수사권 행사까지도 고려하고 있음을 밝혔다.

 

다만 국가인권회도 체육계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할 독립조직을 만들 움직임을 보여 윤리센터와 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인권위 내에는 임시 조직인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특조단)이 꾸려져 14명의 전담 조사관이 활동 중이다. 인권위 내부 회의자료에 따르면 “기존 특조단을 독립기구로 만들면 조사관이 3∼4명에 불과한 윤리센터와 달리 전문적이고 강제적인 조사가 가능하고 스포츠계 외부에서 감사나 피해 구제를 한다는 장점이 있다”며 독립조직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위 특조단이 지금까지 폭력 행위 실태조사 외에 제대로 한 일이 없으면서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송용준 기자 eidy01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