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은 “1987년 이뤄진 9차 개헌은 체계정합적이지 않고, 위헌적인 요소(헌법 29조2,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의 이중 배상 금지)가 있다”며 “특히 제헌헌법에 규정된 지방자치 관련 조항이 그대로 있고, 정보화 사회 등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내용이 많다”고 개헌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역대 정권이 개헌을 추진했고, 2017년 국회 개헌특위가 구성돼 활동하는 등 헌법 개정과 관련해 정치권과 학자들이 연구를 많이 하는 등 철저히 준비된 상태”라며 “그러나 여야가 권력 구조 개편을 놓고 합의할 가능성이 작아 개헌은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여야가 국회 원 구성 과정에서 법사위원장 자리를 놓고 합의조차 못 하며 형성된 대결국면에서 어떻게 개헌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국회 법사위원장을 둘러싼 여야 이견으로 21대 원 구성이 파행을 겪는 데 대해 “1988년 13대 국회부터 32년간 여야가 국회 상임위원장을 의석수에 따라 배분한 것은 국회법에 없으나 오랫동안 해 온 관습법”이라며 “다수 의석을 얻었다고 해서 싹쓸이하는 것은 아니다”며 17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한 민주당의 행태를 나무랐다. 이어 “그동안 야당이 맡았던 국회 법사위원장을 차지하지 못해 자기 당에 배분된 국회 부의장과 7개 상임위원장을 추천하지 않은 미래통합당의 처사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성 전 총장은 “많이 가지면 베풀어야 하는데, 많을수록 더 갖겠다는 게 권력의 속성이고 인간의 심성인가. 정치에도 나눔의 미학이 필요하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고 상생의 정치와 협치를 여야에 주문했다.
―어떤 형태로 헌법을 바꾸어야 하나.
“제도를 변경해보자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제도적으로 완화하려면 권력을 분점해야 한다. 순수 의원내각제가 방안일 수도 있겠지만 1960년 의원내각제를 처음으로 실시했다. 그때 말이 민주당 내 신파, 구파였지 사실상 민주당의 신파, 구파 양당제였다. 신파가 구파보다 의석이 조금 더 많았는데 신파의 장면 총리와 구파의 윤보선 대통령은 맨날 싸웠다. 의원내각제가 채택되면 똑같은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나라의 큰 어른으로서 외교, 통일, 국방 등 외치를 맡고 총리는 내치를 담당하며 권력을 나눠야 한다. 이원정부제가 꼭 좋다는 게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에 따른 폐해가 워낙 심각하니 과도기적으로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나눠 갖는 모양새를 헌법에 갖춰 놓자는 것이다.”
―국회 의석이 진보진영 190석, 보수진영 110석이다. 개헌을 추진할 적기가 아닌가.
“어렵다. 연구가 안 돼 개헌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권력 구조를 놓고 여야 합의가 쉽지 않다. 대선 때 개헌을 공약해도 어느 정당이든 정권을 잡으면 생각이 달라진다.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말 개헌을 제안했는데 대선을 앞두고 제대로 진행될 리가 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초인 2018년 3월, 개헌안을 발의했으나 야당이 본회의 의결에 불참해 무산됐다.
“문 대통령이 집권 초 개헌안을 발의한 것은 전임 대통령에 비해 의미가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나서는 것은 적절치 않다. 개헌은 국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통과된다. 야당에 협조를 안 구하고 개헌안을 내봐야 안 될 것이 뻔한 이치를 아는 문 대통령이 굳이 제출했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의원 특권을 내려놓는 차원에서 헌법에 규정된 의원의 불체포 특권과 면책특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다.
“의원의 불체포 특권, 면책특권은 각국 헌법에 다 규정돼 있다.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왕이 국회의원을 체포하는 것을 방지하고, 민주화 이후엔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 의해 국회의원의 정상적인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규정한 것이다. 면책특권과 관련해선 의회에서 의원의 직무상 발언과 표결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까지도 보호해줄 필요가 있느냐가 논의된 정도다. 의원의 불체포, 면책특권 존재 자체에 대해선 이의가 없다.”
―우리나라에 3권 분립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나. “안 되고 있다. 그러니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하지 않나. 대통령 한 사람이 다하고 있다. 전부 대통령 눈치만 본다. 법원도 마찬가지다. 지난 수십 년간 대법원장은 대법관 중에서 임명됐다. 대법관이 아니면 하다못해 고등법원장 중 고참 법관을 대법원장에 임명해야 하는데 (현 정부는) 초임 지방법원장을 대법원장에 앉혔다. 박근혜정부 때 황찬현 서울중앙지법원장을 감사원장에 임명했다고 난리를 치지 않았나. 대법관, 헌법재판관 임명도 여야 의석비율대로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헌법정신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당론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전 의원이 단적인 예다. 국회의원은 지역민의 지지로 당선되었지만 국민의 대표자로, 헌법기관으로서 자신의 의사에 따라 발언, 표결한다. 민주당이 당론을 어겼다는 이유로 징계하는 것은 헌법상 큰 원칙인 자유 위임의 법리에 어긋난다. 그런 예는 한두 개가 아니다.”
―정부의 다주택 고위공직자에 대한 ‘1가구 1주택’ 권고는 어떤가.
“정부가 민간인에게 그렇게 하라면 문제지만 국가적인 과제를 추진하며 고위공직자에게 높은 도덕성과 윤리성을 요구할 수 있다. 지난 4월 총선 때 다주택 여당 의원들이 ‘실거주용 1주택 서약’을 했으면 이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위공직자들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
황용호 선임기자 drag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