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화의 관습을 깬 화가, 에두아르 마네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는 프랑스 회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대에 활동한 화가다. 사진의 등장 이후 회화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며 실험이 활발하던 시기다. 그는 부유한 배경을 가지고 1832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 에두아르 마네의 아름다운 여름날
마네는 ‘풀밭 위의 점심식사’로 이름을 알리며 여러 화가와 교류하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는 인상주의 화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 작가들도 있다. 마네와 비슷한 연배의 모네, 르누아르, 시슬레 등 이었다. 함께 자주 어울려 다니자 마네를 인상주의 화가로 여기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실제로 인상주의 화가들이 마네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마네는 인상주의 전시에 단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다. 마네는 이들과 유사하지만 다른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형성했다. 대신 일상을 함께하며 계절의 아름다움을 나누었다.
‘아르장퇴유 정원의 모네 가족(The Monet Family in Their Garden at Argenteuil)’(1874)은 이런 순간을 담은 작품이다. 1874년 여름, 마네는 젠빌리에의 집에서 여름을 보냈다. 파리 근교인 이곳에서 마네의 할아버지가 시장을 역임한 덕에 머무를 별장이 있었다. 젠빌리에의 강 건너에는 아르장퇴유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마침 모네가 이 마을에 가족과 내려와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여름의 장면과 추억을 쌓았다. 종종 이젤을 펼치고 함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짙은 초록이 배경을 가득 채운 화면. 우거진 나무와 풀 덕에 그늘이 넓게 자리 잡았다. 그 아래 붉은색 부채를 손에 쥐고 마네를 쳐다보는 여인이 있다. 여인의 왼편에는 어린아이가 몸을 기댄 채 여유를 부리고 있다. 그 뒤에는 한 남성이 물조리개를 옆에 잠시 내려두고 꽃을 만진다. 이 남성이 모네이고 다른 두 인물은 모네의 아내 카미유, 그리고 아들 장이다. 모네가 집 근처에 마련한 정원에서 이들이 함께 나눈 여름날의 푸르름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 안에서의 평온함이 그림 속에 한참을 머물게 한다.
‘보트 타기(Boating)’(1874) 역시 같은 여름의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앞서 언급한 젠빌리에와 아르장퇴유 사이에 있는 강에서의 모습을 그렸다. 강 위에 작은 보트가 떠 있고 그 안에 한 남성과 여성이 타고 있다. 마네의 시동생이 남성의 포즈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여성은 누구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몸을 반쯤 누운 여성을 보자 부러운 마음이 솟는다. 여름의 햇살과 물의 시원함을 동시에 누리는 느긋함. 요즘의 내가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쉼의 모습이다. 화면의 절반 이상을 채우는 물의 하늘색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더위가 식는다. 그 색과 유사한 톤의 옷을 입은 등장인물들의 차림새에서 여름 느낌이 풍긴다.
주목할 점은 여기서도 그의 회화적 특징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종래의 어두운 화면에 밝음을 도입하던 그의 색 실험은 햇살 가득한 여름을 만나 빛을 낸다. 순간의 인상을 기록하기 위해 붓을 빠르게 움직이던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였지만, 여전히 그의 붓질은 넓고 천천히 흐른다는 것이 강의 묘사에서 보인다. 이렇게 붓질이 만들어낸 평면적이고 도식적인 구성에서 모더니즘이 느껴진다.
마네는 병에 걸려 50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사망하기에 앞서 수년 동안 손발 마비 증세를 경험하며 심신이 지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림을 그렸고 전에 없던 새로운 실험을 했다. 이 시기에 그린 ‘폴리베르제르 바(A Bar at the Folies-Bergere)’(1882)는 최후의 걸작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마네를 마주 보고 서있는 여인과 그녀의 뒷모습이 비친 거울의 모습을 동시에 그렸기 때문이다. 전에 없던 다시점이라는 새로운 시점 구성의 시도다.
평소에 마네의 이름을 들으면 ‘풀밭 위의 점심식사’, ‘폴리베르제르 바’ 등이 떠오른다. 하지만 여름에 마네의 이름을 들으면 ‘아르장퇴유 정원의 모네 가족’과 ‘보트타기’가 떠오른다. 그림 속에서 한낮의 여름, 그 푸르른 여유를 보고 있노라면 엉뚱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처럼 마차를 타고 파리의 과거로 돌아가는 상상. 영화 속에서는 파리의 1920년대로 떠나지만 내가 그 마차를 만난다면 1874년으로 가주면 좋겠다. 인상주의 첫 전시가 열리는 등 활발했던 미술계도 보고 싶지만 무엇보다 마네, 모네와 함께 젠빌리에와 아르장퇴유의 아름다운 여름을 보고 싶다.
김한들 큐레이터 / 국민대학교 미술관,박물관학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