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거래 사이트 ‘웰컴투비디오(W2V)’를 만들고 운영한 손정우씨의 미국 송환 불허 결정이 내려진 지 열흘이 지났지만 재판부의 결정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성범죄 양형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국제 아동구호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은 16일 논평을 내고 “우리나라 재판부가 손씨에게 부양가족이 생겼고 반성한다는 등의 이유로 1년6개월의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이어 “사법부의 관용적인 판결에 유감을 표하며, 향후 아동 대상 성범죄에 내려지는 판결이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지 면밀히 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지난 2월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탁틴내일과 공동으로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제출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에 관한 양형 의견서’를 보면 감경 사유가 가해자 중심으로 적용된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초범, 형사처분 전력 없음, 진지한 반성, 범행 인정, 자백, 합의, 혼인 여부, 가해자의 연령·직업’과 같은 감경 사유는 가해자 중심적으로 적용돼 낮은 형량을 내놓는 데에 일조한다는 비판이다. 손씨의 판결에서도 나이가 어리고 혼인을 해 부양가족이 있다는 점이 감경 사유로 작용했다.
여성단체들은 올해 말로 예정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마련에서 높은 양형기준을 책정하는 것과 함께 감경요인을 손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감경요인이 성폭력 가해의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적용되는 것이 문제”라며 “가해자가 진짜로 반성한 것이 아니라 온라인 반성문 사이트에서 따온 형식적인 반성문을 내도 감경 사유로 채택된다든지 범행이 이어진 기간이 7년인데도 초범이라고 감경해주는 등이 대표적인 예시”라고 말했다. 김 부소장은 “이런 감경요인들에 따라 형량을 감경해주는 것이 재범을 막는다는 근거도 없다. 어떤 감경요인은 피해자에 비해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가해자의 권력을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므로 사법부가 현재의 감경요인을 재고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발표한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한 의견서’는 지난해 선고된 성범죄 형사판결 총 137건을 분석한 결과를 언급하며 일반 감경 사유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의견서에 따르면 ‘진지한 반성’, ‘사회적 유대관계’, ‘피고인의 평판’, ‘주취’, ‘초범’, ‘친족관계에서의 부양 사실’ 등 일반적인 여섯 가지 감경요소는 판사 재량에 따라 관행적으로 적용되며 사법부의 가해자 중심적 사고를 여실히 드러낸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건의 구체적인 범죄성, 피해자의 상황과 처벌 의사 등 피해자의 목소리가 양형 판단 시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