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발언 처벌 신중”… 표현의 자유 확대한 ‘김명수 코트’ [이재명 기사회생]

대법, 무죄 취지 판결 근거는
“상대후보와 질의·응답 과정서 나온 부정확한 답변 허위사실 공표 아냐”
선거운동에서 발언의 허용 기준 확대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재명 경지도지사의 선고공판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로써 후보자 토론회에서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더욱 넓게 보장할 수 있게 되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6일 이재명 경기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무죄취지로 판결을 내린 직후, 대법원은 보도자료에서 판결 의의를 이같이 설명했다. ‘표현의 자유’를 확대해석했다는 점에서 ‘김명수 코트’의 뚜렷해진 진보적 성향이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이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이 5명이나 됐다. 그만큼 상당한 논란이 뒤따를 수 있는 판결이다.

◆“전향적으로 선거운동 자유 확충”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총 13명의 대법관과 김명수 대법원장 중 이 지사의 변호를 맡은 적이 있는 김선수 대법관과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이 참여, 7명의 다수의견과 5명의 소수의견으로 갈렸다.

 

이 지사 판결의 핵심은 2018년 지방선거 당시 TV토론회에서 이 지사가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키려고 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허위사실에 해당하느냐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이 지사의 발언을 궁극적으로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상대당 후보와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나온 답변인데, 이 과정에서 일부 부정확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할 수 여지가 있는 답변을 한 것을 두고 허위사실 공표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지사의 발언을 적극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형벌법규에 따른 책임의 명확성, 예측가능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판결은 후보자 토론회와 같은 선거운동에서 발언의 허용 기준을 넓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법원도 판결 후 보도자료에서 “공직선거 후보자 등이 후보자 토론회의 토론과정 중에 한 발언을 이유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하는 것에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고 했다.

이석배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허위사실 유포 범위해석을 (유죄로 판단한) 2심에서 너무 넓게 해석했고, 그것에 대해 바람직한 기준을 대법원에서 세워준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직선거법 전문 변호사인 황정근 변호사는 “허위사실 공표죄에 대해 기존 판례보다 전향적으로 선거운동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확충한 쪽으로 (판례가) 옮겨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유권자 판단 그르칠 정도”… 5명 달한 소수의견

이날 판결의 소수의견은 5명이었다.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이 지사의 발언을 ‘공표’로 해석하지 않은 다수의견과 대립각을 세웠다. “‘공표’의 범위를 제한하는 해석은 자칫 선거의 공정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 사이의 균형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지사가 친형의 정신병원 입원을 지시했음에도, TV토론회에서의 상대당 후보 질문에 이를 부인하는 답변을 했고,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을 숨기면서 유리한 사실만을 덧붙인 것은 유권자의 공정하고 정확한 판단을 그르칠 정도로 전체적으로 보아 진실에 반하는 사실을 공표한 경우라고 판단했다.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이 상당했다는 것은 이번 판결이 논쟁적 측면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했다면 한 것이지 이를 질문했을 때 답변한 것과 적극적으로 했다는 걸 구분해서 다르게 보는 건 궁색해 보일 수 있다”며 “사회 분위기와 정치적 흐름, 이런 걸 많이 의식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법조계 보수인사들은 이번 판결은 진보성향의 ‘김명수 코트’ 색깔이 드러난 것으로 평가한다. 김 대법관은 진보 성향으로 꼽히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고, 주심인 노 대법관도 진보성향의 우리법연구회 출신이었다.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보수·중도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의도도 의심한다. 한 변호사는 “이건 법리적 판결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판결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지지자들이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인근 지하철 서초역 8번 출구 앞에 상고심 파기환송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마 치며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로 떨어져 앉아 재판 방청

이날 대법원 주위는 재판 시작 전부터 시끄러웠다. 대법원은 통행을 제한했다. 판결이 열린 2층 대법정에는 방청권이 배부된 60명의 일반인들과 기자들이 앉아 판결을 지켜보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의식해 좌석을 띄운 채 앉았다.

참석자들과 대법관들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고 판결문을 낭독한 김명수 대법원장과 박상옥 대법관(소수의견)만이 낭독 때 마스크를 벗었다. 이날 판결은 TV생중계와 유튜브를 통해 이뤄졌는데 2019년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재판 때 이후 두 번째다.

 

대법원이 무죄취지의 판결을 끝내자 방청인들 중 이 지사의 지지자로 보이는 이들이 일어나 박수를 쳐 방호원들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이들은 대법관들을 향해 “감사합니다”를 외쳤고, 대법원을 나서면서는 “사필귀정”, “잘됐다”를 연호하기도 했다.

 

이도형·안병수 기자 scop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