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이어 라티노 일어날라… 여군 피살에 美육군 ‘전전긍긍’

‘성추행 후 피살’ 女軍 바네사 기옌 사건
라티노 출신 포함된 독립 위원회가 조사
라티노 출신 미 여군 바네사 기옌의 추모 벽화 앞에 추모객들이 두고 간 꽃과 양초 등이 놓여 있다. 뉴시스

흑인에 이어 라티노(히스패닉) 주민들까지 들고 일어설까 우려한 걸까. 미국 육군이 성추행 후 살해당한 여군 상병 바네사 기옌(20) 사건을 독립적인 위원회에 맡겨 진상조사를 할 뜻을 밝혀 결과가 주목된다. 기옌은 라티노 출신이라 미국 내 라티노 사회를 중심으로 이 사건의 불공정한 처리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만만치 않다.

 

16일 외신에 따르면 기옌 사건은 지난 4월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텍사스주의 육군 기지인 포트후드에서 복무 중인 기옌(당시 일병)이 실종됐다. 기옌은 포트후드에 주둔 중인 미 육군 제3기병연대 공병대대 소속이었다.

 

수색에서 별다른 성과가 없는 가운데 기옌 가족이 뜻밖의 정황을 제시했다. 실종 전 기옌이 집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에게 “상급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호소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신고하겠다”고 하자 기옌은 “성폭력을 당한 다른 여군도 알고 있지만 그들이 피해를 신고해도 부대에서 무시했다”며 만류했다고 한다.

 

기옌은 “신고를 했다간 엄마가 어떻게 될지 몰라 두렵다”고도 했다고 어머니는 전했다.

 

헌병이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시간이 흘러도 기옌의 행방은 물론 누가 성추행을 했는지 용의자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육군 지휘부는 라이언 매카시 육군장관이 직접 나서 기옌의 실종 사실을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하고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란 입장도 밝혔다.

 

미 육군 복무 도중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살해된 라티노 출신 바네사 기옌(20) 일병. SNS 캡처

사건이 반전을 맞은 건 지난달 30일의 일이다. 포트후드로부터 약 40㎞ 떨어진 강가의 농가에서 트랙터를 몰고 밭일을 하던 어느 농부가 시신 일부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시신은 기옌의 것으로 판명이 났고 헌병은 그간 용의자로 의심해 몇 차례 조사했지만 결정적 물증을 잡지 못해 놓아줬던 같은 부대 상급자 에런 로빈슨(당시 상병)의 체포에 나섰다.

 

수사망에 좁혀오는 것을 느끼자 로빈슨은 몰래 부대를 빠져나갔고 수사대가 들이닥치기 전 자신에게 총을 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헌병과 경찰은 로빈슨의 여자친구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여자친구는 “로빈슨이 둔기로 기옌을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훼손했다”며 “나도 시신을 유기하는 과정에 동참했다”고 실토했다.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후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반대시위 모습. 연합뉴스

미 육군은 포트후드에 조사단을 급파해 이번 사건이 라티노에 대한 인종차별과 관련이 있는지 조사 중이다. 기옌은 사후에 일병에서 상병으로 1계급 특진이 추서됐다. 육군은 이 사건 조사를 헌병 등 기존 수사기관이 아닌 독립 위원회에 맡기기로 하고 미국라티노시민연맹(LULAC)과도 긴밀히 협조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의 가혹행위 끝에 사망한 사건이 미 전역에 걸친 인종차별 반대시위로 번져 한바탕 홍역을 치렀는데 라티노까지 들고 일어날까봐 육군은 물론 미 국방부 전체가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라이언 매카시 육군장관은 성명에서 “미 육군의 힘은 우리의 다양성에서 나온다”며 “육군은 라티노를 포함해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집단이란 점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이어 “육군을 보다 포용적인 조직으로 만들고 싶다”며 “LULAC, 그리고 미국 내 모든 라티노 주민 공동체과 육군의 관계를 더욱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