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박원순 성추행 의혹' 대응 논란 끊이지 않는 까닭은?

성범죄 방지, 피해자 보호·지원 주관하는 여성가족부 /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 대하는 태도 논란 확산 / 정부 관계자 "여권 눈치 살피는 것일 수도 있다"
여성가족부 기관문양. 여성가족부 제공

정부의 성범죄 방지와 피해자 보호·지원을 주관하는 여성가족부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여가부의 입장 발표가 과거 권력형 성범죄 사건에 대응한 선례에 비춰 뒤늦어 보이는 점, '2차 가해' 논란을 부른 피해자 호칭을 두고도 성범죄 피해자 지원 주무부처로서 모호한 태도를 취한 점 등이 논란을 부추긴 양상이다.

 

여가부는 지난 14일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성범죄 피해자 지원기관과 협력해 필요한 조치를 해 나가겠다는 내용이다.

 

이런 입장 발표는 박 전 시장의 사망과 함께 성추행 피소 사실이 알려진 지 나흘만이다. 여성변호사협회와 여성계 등에서는 의혹 발생 직후부터 진실 규명과 피해자 보호를 촉구했던 점을 고려하면 여가부가 입장을 내놓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끌었다는 인상을 남겼다.

 

특히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의 여가부 대처 수위와 대비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여가부는 안 전 지사의 성폭력 피해자인 김지은 전 비서가 2018년 3월5일 한 방송에 출연해 8개월간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발하자, 바로 다음 날 '권력형 성폭력에 철저한 조사와 엄중한 처벌 이뤄져야'라는 제목의 입장을 냈다. 충청남도의 성희롱·성폭력 실태에 대한 특별점검에 나서겠다는 강도 높은 대응 방안이 당시 입장문에 담겼다.

 

아울러 피해자가 2차 피해에 노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피해자를 보호하고, 상담·무료 법률 지원·의료비·심리치료 등 피해자가 필요한 모든 지원 서비스도 적극적으로 제공하겠다는 구체적 계획도 당시 여가부는 제시했다.

 

정현백 당시 장관은 "조직 내 위계질서하에서 발생한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대해 수사·사법기관의 철저한 조사와 엄중한 처벌이 요구된다"고 직접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권력형 성범죄 의혹 사건에 대처하는 신속성, 피해자 보호 및 진상규명을 위해 즉각적으로 취할 조치의 구체성 등에서 선명하게 비교된다.

 

여가부는 안 전 지사 사건 때와 달리 이번 박 전 시장의 성폭력 의혹 사건을 두고는 입장 발표 시기가 늦었을 뿐 아니라 대응 수위도 낮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전 시장 사건에 대한 여가부의 입장문에는 "고소인의 피해자 지원기관들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지원기관과 협력체계를 통해 추가로 필요한 조치를 해 나가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시에 대한 점검 계획과 관련해서는 "서울시가 요청할 경우 '성희롱·성폭력 근절 종합지원센터'를 통해서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컨설팅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입장문에 적혀 있었다. 서면으로 제시된 입장문에는 이정옥 장관이 별도로 발언한 내용이 표시되지 않았다.

 

더구나 입장문에 담긴 '고소인'이라는 표현마저도 여권 일각에서 불거진 호칭 문제와 맞물려 2차 가해 논란을 키웠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일부 인사들이 박 전 시장의 전직 비서 A씨에 대해 '피해자' 대신 '피해 호소인' 또는 '피해 고소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면서 사법적 판단이 나오지 않는 한 피해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여권의 인식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 여성계에서 나왔다.

 

이런 가운데 여가부의 입장문에서조차 '고소인'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면서 성범죄 피해자 지원 주무 부처로서 부적절한 용어 사용이 아니냐는 비판론이 제기됐다.

 

여가부는 이를 의식한 듯 이틀 만인 16일 담당 국장이 직접 기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A씨에 대해 "법상 피해자로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에 대해서도 직접 현장에 나가 점검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법에 따라 무료법률 지원과 의료비·심리치료 지원을 하겠다고 구체적 대책을 공개했다.

 

아울러 '장관이 침묵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여가부의 서면 입장문이 곧 장관의 공식 발언"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논란이 커지면서 달라지는 여가부의 태도를 두고 정부의 한 관계자는 "여권의 눈치를 살피는 것일 수도 있고, 장관에 따라 부처의 분위기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소관 업무를 소신 있게 추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평가했다.

 

한편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 비서 측 변호사가 기자회견 당일 서울시 여성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여성정책실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소인 A씨의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는 16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취재진을 만나 '고소 이후 서울시 정무라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실장님인가가 문자를 줬는데 못 받았다"고 답했다.

 

취재진이 '실장'의 정체와 구체적인 문자 내용, 수신 시기를 묻자 "(송다영) 서울시 여성정책실장이었고, 기자회견 당일인 13일 오전 11시 39분께 전화가 왔는데 받지 못했다"며 "직후 실장이 '통화하고 싶다'는 내용의 문자를 남겼는데 기자회견 때문에 이동하느라 응답하지 못했다"고 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