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증거 안 나오면 힘들 것”… ‘6층 사람들’ 회견 만류·압박 정황

고소 이후 연락 와 부정적 입장
“진영론에 휩쓸리지 말라” 회유도
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인이 이틀 지난 16일 서울시청 정문이 폐쇄돼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박원순 전 시장 사망 이후 날이 갈수록 서울시청 ‘6층 사람들’에 대한 비판론이 확산되고 있다. 박 전 시장 최측근이었던 이들이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 A씨를 지원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16일 ‘6층 사람들’이 A씨에게 연락해 부정적 입장을 드러내거나 A씨의 기자회견을 만류하는 등 구체적인 회유·압박 정황을 추가 폭로했다. 이들 지원단체는 “전 현직 고위공무원, 별정직, 임기제 정무 보좌관, 비서관 중 7월 8일 피해자의 고소 사실이 알려진 이후 연락을 취하는 이들이 있다”며 “그러나 책임과 사과가 느껴지는 경우는 극히 일부”라고 비판했다.

 

A씨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서울시의 ‘민관합동조사단’ 구성을 맡은 서울시 현직 간부가 피해자 기자회견을 만류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고소인(A씨) 측 기자회견 당일인 13일 오전 11시 39분쯤 송다영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이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겼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당시 미처 전화를 받지 못했고 문자에도 답하지 못했으며, 그전에 송 실장과 연락을 주고받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13일은 박 전 시장의 영결식이 열린 날이어서 유족 측 부탁을 받아 송 실장이 고소인 측에 기자회견을 미뤄 달라고 요청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 지원단체가 언급한 별정직, 임기제 정무보좌관 등은 박 전 시장을 보좌한 서울시 정무라인 인사들을 말한다. 박 전 시장 집무실이 있는 서울시청 6층을 사용하기 때문에 서울시 공무원들 사이에서 ‘6층 사람들’이라고 불렸다. 이들 대부분은 일반직 공무원이 아니라 박 전 시장이 외부에서 데리고 들어온 별정직 공무원들이다. 이른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다. 주요 업무는 청와대, 정치권, 시청 직원 등과 소통하면서 박 전 시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정치적 행보를 관리하는 것이다. 고한석 전 비서실장과 최병천 전 민생정책보좌관, 장훈 전 소통전략실장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지방별정직 공무원은 ‘단체장이나 의장의 임기 만료나 퇴직 등과 함께 면직된다’고 규정돼 있어 6층 사람들은 박 전 시장 사망으로 자동 면직됐다. 다만 임순영 젠더특별보좌관(젠더특보) 등은 임기가 정해져 있어 서울시에 남았다. 그러나 서울시를 떠난 이들도, 남은 이들도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지원단체에 따르면 이들은 “문제는 잘 밝혀져야 한다”면서도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A씨를) 지지한다”면서도 “정치적 진영론, 여성단체에 휩쓸리지 말라”고 하기도 했다. 6층 사람들은 아울러 “힘들었겠다. 너 같은 여동생이 있으면 좋겠다”면서도 “기자회견은 아닌 것 같다”고 만류하기도 했다.

지난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낸 것이라며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인식 서울시 대변인은 전날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민관조사단을 꾸리겠다고 밝히면서도 서울시 내에서 성추행 호소가 묵살된 과정 등에 대해서는 어떤 해명도 하지 못했다. 특히 임 특보는 책임이 더욱 크다는 의견이 많다.

 

향후 민관조사단의 조사가 진행되면 6층 사람들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지만 조사단 구성 자체가 어려워 보이는 데다 이미 서울시를 떠난 이들이 얼마나 협조할지도 미지수다. 조사단을 꾸릴 송다영 실장이 기자회견 만류 의혹에 휘말린 만큼 공정성을 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6층 사람들이 서로 입을 맞출 가능성도 있다.

황인식 서울시대변인이 15일 오전 시청 브리핑룸에서 직원 인권침해 진상 규명에 대한 서울시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조직적으로 범죄를 비호하고 은폐했다면 서울시청 6층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범죄 집단”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박 전 시장의 조카인 오덕근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박 전 시장의 장례를 유가족들이 가족장으로 치르려고 했으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간청으로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르게 됐다고 주장했다. 오씨는 “장례절차를 협의할 떄 유족대표로 내가 참석했는데 유족들은 가족장으로 조용히 마치고 싶다고 했지만, 의원 한 명이 ‘절대 안 된다’며 서울특별시장을 주장했다”며 “정치적 후유증이 클 거라고 했지만 ‘그 부분은 민주당이 짊어질 문제’라고 해서 서울특별시장으로 치렀다”고 적었다.

 

김유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