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비대화에도 파견 남발… 인력난 ‘빨간불’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전문 분야’에 손을 놓게 된 이유를 검찰 관행인 대형사건 중심주의에 따른 인력 유출에서 찾기도 한다. 잦은 검사 파견으로 수사 역량이 결집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중요 사건에 인력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서 검찰이 캐비닛에 잠든 사건을 연말 등에 몰아서 처리하다 보니 개개의 사건을 제대로 살펴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라임 전주’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고발장이 1년 넘게 묵혀졌던 것처럼(세계일보 2020년 7월15일자 1·3면 참조), 사건을 풀 실마리를 놓치거나, 공소시효의 영향으로 단죄하지 못하는 범죄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중앙지검 한 검사는 “특정 사건에 자원을 쏟아붓는 데 일선에서도 불만이 있는 게 사실이다. 사건이 산더미라 언제 처리할지 까마득하다”고 털어놨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대형 사건들에 기존 인력이 분산되면 민생에 직결된 경제 사건들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며 “때를 놓쳐 수사할 경우 증거 인멸 등이 이미 이뤄졌을 공산이 커 불기소 혹은 각하 처분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놨다.
문재인정부의 검찰 정책 중 하나인 검사의 정부부처 ‘외부 파견’ 축소가 실현되면 일선 검찰청의 인력난이 일부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지난 5월 발간한 ‘문재인정부 3년 검찰보고서’에 따르면 법무부, 국정원, 금융위 등 정부 주요 기관에 파견된 검사의 규모는 2015년 68명, 2016년 67명으로 조사됐다. 이후 정권이 바뀐 2017년에는 62명, 이듬해에는 58명으로 소폭 줄었다. 그러다 지난해에 61명으로 다시 증가했고, 올해엔 4월까지만 벌써 51명의 검사가 외부에 파견된 것으로 나타났다.
◆인력 관리 부실한 ‘검찰 최전선’
검찰이 이른바 ‘얘기되는 사건’ 수사에 집중하면서 민생 사건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렸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는다. 검찰이 특별수사단에 인력을 과도하게 집중하면서 애꿎은 민생 사건 처리가 ‘뒷전’이 됐다는 우려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각종 경제 사건이 집중되는 서울남부지검은 지난해 657건의 미제 사건을 남겨 5년 전인 2015년의 175건에 비해 약 3.8배에 달하는 사건을 캐비닛에 쌓아뒀다. 대부분이 민생과 직결된 형사 사건이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김 전 회장 고발건은 (현실적 문제로) 뭉개졌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라며 “전문성을 갖춘 검사들이 다수 차출되면 일반 형사 사건이 홀대받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현 정부가 강조하는 민생 범죄 우선 처리도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도 이 같은 실정을 아는지라 지난 1월 법무부는 민생사건 수사 및 공소유지에 집중하기 위해 형사·공판부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 조직을 총괄하는 대검과 법무부는 인력 관리에는 소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일보가 최근 5년간 형사부 규모 추이에 대해 질의한 데 대해, 대검찰청은 “검찰 인사 등은 법무부 관할이기 때문에 확인이 어렵다”고 답했다. 이에 법무부에 같은 질문을 했지만 “형사부 인력은 지검·지청장의 권한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사안”이라며 공을 돌리는 모습을 보였다.
검찰의 직제개편 단행에도 형사부가 여전히 사라진 ‘특수부’ 역할을 하고 있어 민생처리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특수부를 반부패수사부로 재편하면서 특별수사 담당 검사의 숫자를 줄이고 이들을 형사부에 투입했다. 민생사건 해결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름이 바뀐 형사부는 여전히 공직·기업범죄 등 굵직한 직접수사에 나서고 있다. 간판만 바뀐 채 특수부가 유지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검찰 관계자는 “사건처리가 늦다는 항의가 검찰 측에 빈번하게 접수되지만 형사부의 여건이 녹록지 않다”며 “업무 처리에 열의가 없다는 내부 비판도 나오지만 구조적인 문제도 선결과제”라고 말했다.
◆검경수사권 조정, 해결 실마리 될까
법조계 안팎에선 올해 안에 적용될 것으로 보이는 검경수사권 조정 개정안이 검찰 여력 확대의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파견 검사 최소화 등이 정부 기관의 협조 및 검찰 수사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장기 과제인 데 반해 수사권 조정 개정안은 시행되면 효과를 빠르게 볼 수 있어서다.
개정안에 따르면 검찰과 경찰에 접수되던 연평균 70여만건의 고소·고발사건 대다수는 경찰이 맡게 될 전망이다. 특히 경찰은 ‘불기소 의견 송치사건’(무혐의 처리사건)에 대한 수사종결권을 갖게 된다. 그간 검찰을 괴롭혀 왔던 방대한 불기소 사건들이 분산되면 검찰도 다소 여유를 찾고 사건에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5년간 검찰의 ‘불기소율’(처리 사건 중 불기소되는 사건 수 비율)은 매해 50%를 넘겨왔다.
검찰 관계자는 “개정안 시행으로 검찰의 실질적 부담이 줄어든다면 저절로 증원 효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수사 종결권을 가지는 경찰의 부실 수사에 대한 우려 속에, 보완 장치로 사건 당사자들의 이의 제기와 검찰의 재수사 요구가 가능하도록 돼 있어, 검찰이 어느 정도 부담을 덜지는 아직 미지수다. 검·경이 신경전으로 대립각을 세우면 오히려 수사 과정만 복잡해질 수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과 경찰 간 상호협력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수사권 조정이 양측의 권력다툼으로 비화하면 법조 환경 개선이 이뤄질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법무부가 밝힌 것처럼 형사부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검찰 문화를 정착시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형사부 조직을 확대하는 동시에, 그간 특수부 위주로 이뤄졌던 승진 관행과 큰 사건을 처리해야 빛나는 조직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안병수·정필재 기자 r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