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공급이 충분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정부가 뒤늦게 수도권 공급대책을 내놓기로 했다. 연이은 부동산 대책에도 시장이 들썩이는 가운데 관련 부처들과 서울시의 엇박자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어서 향후 정책 추진과정에서도 상당한 혼선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시장 원리를 거스르지 않고 꾸준히 공급을 이어가겠다’는 정부의 메시지 발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책 쏟아내도 집값 고공행진 배경엔 공급부족
22차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는 동안 정부는 줄곧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주택 공급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3년간 서울에 연평균 3만9734가구가 입주했는데, 2010년부터 2016년 평균치보다 8000가구 이상 많은 물량이다. 그러나 서울 집값은 역대급으로 치솟았다. KB국민은행 리브온 자료에 따르면, 2017년 5월 6억635만원이었던 서울 아파트의 중위매매가격은 지난달 기준 9억2582만원으로 52.7% 상승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정부가 수요와 공급의 상대성을 무시한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단순히 서울에 주택이 몇 채 있는지보다는 수요에 대비해 충분하게 공급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2018년 통계청 자료를 기준으로 서울(380.7가구)은 경기(377.3가구), 인천(366.2가구)과 함께 전국에서 인구 1000명당 주택 수가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반면 지방과 비교하면 1∼2인 가구의 비중은 훨씬 높은 편이라 인구 대비 더 많은 주택이 필요한 상황이다. 서울에는 통계상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수요도 있다. 주민등록을 다른 지역에 해놓고 이미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거나, 기회만 되면 언제든지 서울에 입성하기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이 대상이다.
◆“공급 공백 줄이고 일관된 메시지 중요”
전문가들은 정부가 입으로는 공급대책을 언급하면서도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2018년부터 총 77만채를 수도권에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개발 제한 규정 등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물량이 많다는 것이다. 그나마 1000가구 이상의 대단지는 3기 신도시를 제외하면 서울의 용산 정비창 부지와 수색역세권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각종 규제가 얽힌 탓에 실제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서울 지역의 주택 인허가 실적은 전년도 같은 기간(3만5077가구)에 비해 36.9% 감소한 2만2149가구에 불과했다. 주택 인허가 실적이 줄었다는 것은 그만큼 앞으로 주택 물량이 덜 풀릴 것이란 의미다. 이 같은 불확실한 공급 계획이 시장 왜곡을 불러일으켰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요와 공급의 시장 원리를 거스르고 인위적으로 가격을 통제하려는 정책은 대부분 성공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계속 공급이 늘어날 것이란 메시지를 주지 않으면 신뢰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주장하는 주택 통계는 공공임대나 원룸까지 다 포함한 수치라서 실제 국민이 체감하는 공급량과는 차이가 있다”며 “그린벨트 해제를 빼고 나오는 공급대책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아직 정비사업과 관련한 규제가 많아서 대책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세준·박수찬 기자, 세종=우상규 기자 3j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