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동차가 오랫동안 장악해온 아세안 시장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값싸고 괜찮은 소형 모델로 신차뿐 아니라 중고차 시장까지 독과점 중인 일본차의 브랜드 파워를 한국 브랜드가 품질과 가격 경쟁력으로 밀어내며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올해 상반기 현대차가 도요타를 제치고 판매 1위에 오르는 이변도 일어났다. 중국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다가 발목이 잡힌 현대차그룹으로선 전 세계 생산·판매 전략을 새롭게 짜면서 중국 생산설비를 질서 있게 빼낼 수 있는 신흥시장 개척이 절실했던 터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아세안 주요 6개국 자동차 시장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기준 총 350만대가 팔린 아세안 시장에서 한국 브랜드의 판매 비중이 2015년 대비 1.3%포인트 증가했다고 22일 밝혔다. 같은 기간 일본 브랜드는 1.5%포인트 감소했고, 중국 브랜드는 1.0%포인트 증가했다. 아세안 내수 시장은 인도네시아 103만대, 태국 101만대, 말레이시아 60만대 등으로, 이들 3개국이 전체 판매의 76%를 차지한다. 이들과 필리핀, 싱가포르, 베트남을 묶어 아세안 주요 6개국으로 부른다.
아세안 외에 인도 시장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의 대안으로 첫손에 꼽히는 곳이 인구와 기술대국인 인도다. 현대차가 22년 전 진출해 닦아온 브랜드 파워 위에 기아차가 지난해 진출, 셀토스 한 모델로 4만5000여대를 팔았다. 그간의 접근법과 다른 고급차, RV(레저용차) 고객 공략이 먹혀든 것이다. 덕분에 현대·기아차는 2015년 17.3%였던 점유율을 지난해 18.8%까지 끌어올렸다.
협회는 향후 일본 브랜드와 비교해 열악한 부품 현지화율을 높이는 한편 현지 생산거점을 구축하고 유통·애프터서비스(AS)망 등을 체계적으로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일본이 소홀한 전기차 시장 선점을 위해 보급형 전기차 생산 등 기업의 노력과 FTA 추진 등 정부의 측면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만기 협회장은 “정부가 완성차와 부품에 대한 관세 인하 협상 추진, 현지 진출 부품업체에 대한 금융·정보 지원, 현지 정부와의 소통을 통한 애로 해소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