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형민간투자(BTL) 방식으로 지어진 ‘천안예술의전당’에 대한 충남 천안시 한 공무원의 자조 섞인 한탄이다. 2012년 6월 개관한 천안예술의전당은 천안시 재정을 압박하는 애물단지나 다름없다. 지난 6월 말까지 7년6개월 동안만 해도 건축비 임대료와 관리인력 인건비, 유지보수 비용 등으로 혈세 971억원이 투입됐다.
민간회사가 관리를 맡고 있는데 31명의 관리인력 인건비와 유지보수비로만 연간 25억원 정도가 든다. 앞으로가 더 심각하다. 20년간 임대료를 지급하기로 한 계약에 따라 2032년 6월까지 해마다 78억원가량을 대야 한다. 운영 적자도 모두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이 때문에 천안시는 4년 전 민간매각을 추진했지만 매입 희망자가 없어 속을 끓이고 있다.
지자체의 건립비 부담을 줄이면서 민간 특유의 경영합리화를 기대한 BTL효과를 전혀 못 살리고 있는 것이다. 대신 해당 지자체는 민간자본에 계약 기간 일정 수익을 보장해야 해 막대한 재정부담만 떠안게 된다.
BTL 방식으로 지어 2011년 6월 개관한 울산박물관은 건립비 512억5200만원 중 472억원이 민자다. 울산시는 개관 후 분기별로 8억8000만원씩 매년 35억2000만원을 사업시행자에게 임대료 명목으로 지급한다. 20년간 물가변동률과 이자상승률 등을 감안해 지급해야 하는 돈은 원금만 1130억원이 넘는다.
박물관 수입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2017년 ‘이집트 보물전’ 외에 모두 무료 전시였다. 주 수입원은 강당 대관인데 이마저도 2018년 2300만원, 2019년 1600만원에 불과했다. 울산시 관계자는 “운영비를 절감하는 데도 한계가 있어 결국 시민들이 최대한 많이 올 수 있도록 기획전시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법 외엔 딱히 방안이 없다”고 토로했다. 민자 등 413억원을 들여 BTL방식으로 지은 전북 익산시 예술의전당 사정도 마찬가지다. 민간이 시설관리를 맡고, 익산시가 운영을 하지만 만성적자에 허덕인다. 2015년 4월 개관 이후 임대료와 관리비 등으로 연간 38억원이 들어가지만 공연장 대관료와 미술관 입장료 등 수입은 2억∼5억원에 불과하다. 지난해까지 쌓인 적자만 170억원이 넘는다.
지방행정연구원은 “연평균 순수지를 토대로 시설당 40년간 평균 적자 규모를 단순 비교하면 위탁은 688억7800만원, 직영은 736억5600만원, BTL은 955억5500만원”이라고 설명했다.
◆단체장의 선심성 사업 추진 등에 제동장치 드물어… 공론화 제도 필요
지역 공공시설 난립과 부실 운영에 따른 지자체 재정부담 등 악순환의 고리에 대한 원인으로 지자체장을 꼽는 경우가 많다. 인사·예산권 등 막강한 권한을 쥔 단체장이 표를 의식해 필요 이상의 공공시설 투자를 추진하면 막을 도리가 없다는 지적이다. 감사원 산하의 감사연구원도 2015년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지자체의 인사, 재정, 정책수립 및 집행에 관한 단체장의 권한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면서 “그러나 차기 선거를 의식해 인기에 부합한 선심성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지방재정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천안은 천안예술의전당과 함께 BTL사업으로 홍대용과학관, 두정도서관, 생활체육공원이 조성돼 운영되고 있다. 적자투성이인 이들 시설에 해마다 145억원 넘는 세금이 투입되고 있다. 이들 시설이 착공될 당시 한 시의원은 성무용 시장에게 “막말로 현 시장이 BTL로 각종 대형사업을 추진해 놓으면 다음 시장은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빚만 갚아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각 지자체의 ‘선심성’, ‘치적용’ 시설 투자를 막으려면 중앙정부 등의 엄정한 타당성 조사와 함께 합리적 운영 방식에 관한 주민 공론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여규동 지방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공공시설은 콘텐츠를 계획하고 수요 등을 조사해 하드웨어를 만들어야 하는데 대부분 건너뛰고 (졸속으로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며 “실적 부진 시설에 대한 모니터링과 컨설팅을 실시하는 등 외부의 개입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민섭 기자, 천안·울산·익산=김정모·이보람·김동욱 기자 st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