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막대한 건립비에 운영비도 혈세 줄줄
◆793개 짓는 데 26조 들였지만… 매년 평균 10억대 적자
전국 지방자치단체 공공시설의 적자는 해마다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각 지자체가 주민들의 생활·여가복지 향상을 위해 필요한 사업이라며 국비와 자체 예산 등을 끌어모아 지은 공공시설 상당수가 운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해당 시설의 공공성을 감안해도 운영 적자 규모가 너무 크다 보니 밑빠진 독에 물붓기처럼 혈세 낭비가 심하다. 이 중에는 애당초 사업의 실효성과 타당성을 정밀하게 따지지 않은 채 지역 단체장이나 국회의원 등이 ‘치적용’이나 ‘선심성’으로 밀어붙였다가 낭패를 본 경우도 적지 않다.
◆평균 건립비 337억원, 운영수지 적자는 11억원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은 행정안전부의 지방재정 통합 공개 사이트인 ‘지방재정365’에 있는 각 지자체 공공시설(건립비 기준 기초·광역 각각 100억원·200억원 이상)의 개요와 운영비용, 수입현황 등을 분석해 최근 ‘이슈 브리핑’ 형태로 자료를 냈다. 지방재정365는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해 지역 공공기관들의 재정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한데 모아 놓은 사이트다.
지방행정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793개 공공시설을 짓는 데 들어간 돈은 무려 26조7200억원으로, 시설당 평균 337억원이 투입됐다. 문제는 이들 시설 대부분이 해마다 큰 적자를 기록하며 운영난을 겪고 있거나 심지어 지역 주민들에게조차 외면 받고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공공시설이 무분별하게 늘면서 2014년 4849억원(599곳) 수준이었던 지자체 공공시설 적자 규모는 2015년 6038억원(648곳), 2016년 6874억원(684곳), 2017년 7663억원(730곳), 2018년 8410억원(793곳)으로 급증세다. 가뜩이나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는 공공시설 운영적자를 감당하느라 허덕일 수밖에 없다. 덩치가 큰 건립비는 그나마 국비 등의 외부 지원을 받지만 시설 운영비는 고스란히 지자체 몫이기 때문이다. 2018년 공공시설당 평균 운영수지 적자는 10억6100만원으로, 2014년(8억1000만원)보다 31%나 늘었다. 이는 특히 건립비가 많이 든 시설들만 대상으로 분석한 것이어서, 기초·광역 각각 100억원·200억원 미만 공공시설들의 운영 실태까지 감안하면 해마다 적자 규모는 1조원을 거뜬히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
하수종말처리장 위에 스포츠센터와 아트홀, 전망대가 들어선 경기 용인의 ‘아르피아 타워’는 2012년 개장 당시 대형 오피스텔을 연상시키는 외관으로 국내 유수의 디자인상을 휩쓸었다.
김학규 전 용인시장이 지역 랜드마크를 표방하며 추진한 것인데 관람객이 뜸한지 오래됐다. 용인시 죽전동 주민 최모씨는 “이곳에 전망대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는 “공공시설은 우선 해당 지역과 인근 주민들이 적극 이용해야 한다”며 “그러지 못하니 유지·관리 비용만 자꾸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자체와 해당 시설은 양질의 콘텐츠와 서비스를 마련해 제공하고 홍보활동도 열심히 해서 주민들이 자주 찾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공복지와 경영 합리화의 절충점 찾아야”
이들 공공시설에 대한 투자가 수익 극대화가 아닌 지역 복지 차원에서 제공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2014∼2018년 매년 50억원 이상의 운영 손실을 기록한 공공시설들의 면면을 보면 그럴 만하다.
광주·인천·울산·대구문화예술회관과 서울역사박물관, 한성백제박물관, 대구오페라하우스·부산시립미술관·군포중앙도서관 등 21개 시설은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다.
강동구의 한 관계자는 “강동아트센터에서는 다른 공연장에서 최고가 57만원에 판매된 오페라 ‘라보엠’ 티켓을 6만원 이하로 판매하는 등 지역주민을 위한 예술복지 차원에서 적자를 감수하고 운영한다”고 항변했다. 이 아트센터는 2010년 건립 추진 당시 ‘재정상 무리한 사업’이란 논란과 함께 2012년 입찰비리 사건 등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광주문예회관을 직영하는 광주시 측도 “변변한 문화시설이 없는 지방에서 시민들의 문화 향유를 위해서는 문예회관과 (인건비가 많이 들지만) 상임예술단 운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공시설의 특성상 어느 정도 적자 운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감안해도 그 규모가 작지 않은 데다 설립 취지도 제대로 못살리는 시설은 애당초 신중히 검토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2010년 국비 등 15억원을 들여 지은 뒤 적자를 면치 못하다 2015년 운영이 중단된 충주공예전시관은 지금까지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충주시의 위탁을 받아 운영했던 중원문화재단 관계자는 “공예관의 접근성도 좋지 않고 대규모 행사나 이색 프로그램 진행이 어려워 수익도 거의 없었다”고 토로했다. 경북 포항시가 60억원(국비 15억, 도비 20억, 시비 25억원)의 혈세를 들여 남구 연일읍 형산강변에 조성한 야외물놀이장도 추진 당시 논란이 됐다. 장마철이나 태풍이 올 때 침수가 잘되는 곳에다 여름에 한시적으로 운영될 시설을 짓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제기된 것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경북 칠곡에 있는 야외수영장보다는 예산이 덜 들었고 1년에 몇 번 침수되지 않을 것”이라며 “시설물을 연중 사용할 수 있는 방편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지방행정연구원 여규동 부연구위원은 “향후 지자체가 추진할 공공시설의 경우 사전에 객관적인 타당성 평가를 거쳐 부적절하면 추진하지 못하게 하거거나 적정 수준의 건립을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며 “기존 시설들도 운영수지 나 이용률 제고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조7000억 들여 지은 인천 AG 경기장… 年 100억씩 ‘곳간’ 빼먹는 골칫덩이로
2014년 9월 인천에서는 아시아 각국 선수 1만3855명이 금메달을 놓고 보름간 기량을 겨뤘다. 아시아 45개국 선수들이 참가한 인천아시안게임이다. 개회식에 이어 폐회식까지 열린 서구 아시아드주경기장을 짓는 데에만 4700억원이 들어갔다.
26일 찾은 주경기장에서는 6년전 화려함이 온데간데없고 황량감만 느껴졌다. YMCA 유아스포츠단과 웨딩홀, 영화관 등이 들어서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초창기에는 수익시설 유찰이 거듭되면서 인천 16개 신설 경기장 중 최대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시설 임대수입을 유지관리비로 나눈 수지율은 2018년 51.9%, 2019년 79%로, 여전히 적자다.
양잔디로 된 주경기장 내 축구장은 보수가 시급해 보였다. 양잔디는 성장이 왕성해 일주일에 3∼4차례 깎아야 한다. 천연잔디라 2시간 이상 연속 사용해서도 안 된다. 현재 한 게임을 위해 빌리는 데 60만원인데, 동호인들이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주말에도 활용 사례가 매우 드물다.
아시아드주경기장의 현실은 예견됐다는 지적이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국제 규정대로 7만석 규모의 주경기장을 새로 짓자는 의견과 문학경기장을 보수해 쓰자는 주장이 2010년 말까지 팽팽히 맞섰다. 정부도 과잉투자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국고 지원까지 미뤘다.
민선 4기 안상수 시장이 시 예산과 민간자본만으로라도 추진하겠다면서 밀어붙였다. 2010년 7월 취임한 송영길 시장이 심각한 재정난을 들어 주경기장 신설 재검토를 선언했으나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서구 주민들 여론에 결국 2개월 만에 번복됐다.
국비 4670여억원과 지방채 발행을 통한 시비 1조2300여억원이 투입된 16개 아시안게임경기장들은 매년 100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강화고인돌체육관과 아시아드BMX경기장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이곳의 수지율은 2017년 10.6%, 2018년 9.3%, 2019년 6.6%에 그치고 있다. 올해는 3% 수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막대한 혈세를 들인 경기장들에 사용료나 임대료를 과도하게 높이는 방법이 아닌 공공성과 수익성을 모두 잡을 수 있는 활성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시 관계자는 “경기장별 활용 방안을 체계적으로 실행하며 장기적으로 안정된 수익구조를 갖추겠다”고 말했다.
<중> 선심성 투자에 지자체 곳간은 휘청
◆민자로 뚝딱 짓고 세금으로 비용 보전… 애물단지 된 BTL사업
임대형민간투자(BTL) 방식으로 지어진 ‘천안예술의전당’에 대한 충남 천안시 한 공무원의 자조 섞인 한탄이다. 2012년 6월 개관한 천안예술의전당은 천안시 재정을 압박하는 애물단지나 다름없다. 지난 6월 말까지 7년6개월 동안만 해도 건축비 임대료와 관리인력 인건비, 유지보수 비용 등으로 혈세 971억원이 투입됐다.
민간회사가 관리를 맡고 있는데 31명의 관리인력 인건비와 유지보수비로만 연간 25억원 정도가 든다. 앞으로가 더 심각하다. 20년간 임대료를 지급하기로 한 계약에 따라 2032년 6월까지 해마다 78억원가량을 대야 한다. 운영 적자도 모두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이 때문에 천안시는 4년 전 민간매각을 추진했지만 매입 희망자가 없어 속을 끓이고 있다.
전국 곳곳에 자리한 공공시설 상당수가 막대한 혈세를 까먹으며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못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들 사업이 사전에 타당성과 효용성, 수익성 등을 객관적으로 면밀히 따지지 않고, 지역 여론에 편승하거나 선심성 공약과 임기 중 치적에 신경 쓰는 지방자치단체장, 국회의원의 입김에 휘둘려 추진되는 것과 무관치 않다. 특히 천안예술의전당 사례처럼 지자체 재정여력의 한계로 당장 짓기 힘든 데도 민간자본을 끌어들인 BTL방식으로 무리하게 대형 공공시설 사업을 추진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BTL방식 공공시설의 적자 규모가 가장 커
27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국 지자체의 건립비가 100억원(기초)·200억원(광역) 이상인 대형 공공시설 793곳은 각각 지자체 직영(373곳), 지자체 산하 기관 등에 위탁(404곳), BTL(16곳) 방식으로 운영됐다. 지방행정연구원이 이들 공공시설의 최근 5년간(2014∼2018년) 연평균 순수지(운영비-수익)를 분석한 결과 총 적자 규모가 연평균 7527억4000만원에 달했다. 시설당 9억4700만원의 적자를 보고 있는 셈이다. 운영방식별로 비교하면 위탁이 -7억1810만원으로 가장 적고, 직영 -11억7580만원, BTL -15억380만원 순이었다. 민간회사가 관리·운영하는 공공시설의 적자 규모가 시설관리공단이나 비영리 재단·단체에 위탁한 시설보다 2.1배나 크다.
지자체의 건립비 부담을 줄이면서 민간 특유의 경영합리화를 기대한 BTL효과를 전혀 못 살리고 있는 것이다. 대신 해당 지자체는 민간자본에 계약 기간 일정 수익을 보장해야 해 막대한 재정부담만 떠안게 된다.
BTL 방식으로 지어 2011년 6월 개관한 울산박물관은 건립비 512억5200만원 중 472억원이 민자다. 울산시는 개관 후 분기별로 8억8000만원씩 매년 35억2000만원을 사업시행자에게 임대료 명목으로 지급한다. 20년간 물가변동률과 이자상승률 등을 감안해 지급해야 하는 돈은 원금만 1130억원이 넘는다.
박물관 수입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2017년 ‘이집트 보물전’ 외에 모두 무료 전시였다. 주 수입원은 강당 대관인데 이마저도 2018년 2300만원, 2019년 1600만원에 불과했다. 울산시 관계자는 “운영비를 절감하는 데도 한계가 있어 결국 시민들이 최대한 많이 올 수 있도록 기획전시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법 외엔 딱히 방안이 없다”고 토로했다. 민자 등 413억원을 들여 BTL방식으로 지은 전북 익산시 예술의전당 사정도 마찬가지다. 민간이 시설관리를 맡고, 익산시가 운영을 하지만 만성적자에 허덕인다. 2015년 4월 개관 이후 임대료와 관리비 등으로 연간 38억원이 들어가지만 공연장 대관료와 미술관 입장료 등 수입은 2억∼5억원에 불과하다. 지난해까지 쌓인 적자만 170억원이 넘는다.
지방행정연구원은 “연평균 순수지를 토대로 시설당 40년간 평균 적자 규모를 단순 비교하면 위탁은 688억7800만원, 직영은 736억5600만원, BTL은 955억5500만원”이라고 설명했다.
◆단체장의 선심성 사업 추진 등에 제동장치 드물어… 공론화 제도 필요
지역 공공시설 난립과 부실 운영에 따른 지자체 재정부담 등 악순환의 고리에 대한 원인으로 지자체장을 꼽는 경우가 많다. 인사·예산권 등 막강한 권한을 쥔 단체장이 표를 의식해 필요 이상의 공공시설 투자를 추진하면 막을 도리가 없다는 지적이다. 감사원 산하의 감사연구원도 2015년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지자체의 인사, 재정, 정책수립 및 집행에 관한 단체장의 권한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면서 “그러나 차기 선거를 의식해 인기에 부합한 선심성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지방재정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천안은 천안예술의전당과 함께 BTL사업으로 홍대용과학관, 두정도서관, 생활체육공원이 조성돼 운영되고 있다. 적자투성이인 이들 시설에 해마다 145억원 넘는 세금이 투입되고 있다. 이들 시설이 착공될 당시 한 시의원은 성무용 시장에게 “막말로 현 시장이 BTL로 각종 대형사업을 추진해 놓으면 다음 시장은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빚만 갚아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각 지자체의 ‘선심성’, ‘치적용’ 시설 투자를 막으려면 중앙정부 등의 엄정한 타당성 조사와 함께 합리적 운영 방식에 관한 주민 공론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여규동 지방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공공시설은 콘텐츠를 계획하고 수요 등을 조사해 하드웨어를 만들어야 하는데 대부분 건너뛰고 (졸속으로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며 “실적 부진 시설에 대한 모니터링과 컨설팅을 실시하는 등 외부의 개입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계부터 수익 고민, ‘서울월드컵경기장’ 연 58억 흑자
해마다 부담스러운 규모의 적자 신세를 면치 못하며 지방자치단체의 애를 먹이는 공공시설이 도처에 널려 있는 반면 시민들이 애용하는 공공성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공공시설도 있다.
27일 서울시설공단에 따르면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지난해 수입 189억원, 지출 131억원으로 58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치렀던 국내 10개 경기장 중 유일하게 매년 흑자를 냈다. 건축비도 지난해까지 모두 회수했을 정도다. 비결은 특별한 게 없다. 경기장을 짓기 전부터 사후 활용 방안 등을 꼼꼼히 체크하고 준비한 결과다. 서울시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월드컵 이후’를 고민했다. 월드컵이 끝나도 장기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하도록 수익모델을 검토하고, 경기장 아래에 수익시설이 들어설 수 있는 유휴공간을 많이 만들었다.
수입의 대부분은 임대료다. 경기장에 쇼핑몰과 영화관, 수영장, 사우나 등을 넣어 지역주민들이 꾸준히 찾는 공간으로 만든 게 주효했다. 2004년부터 프로축구단 FC서울의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동시에 다양한 문화행사를 여는 것도 수익을 높이는 비법이다.
서울시설공단이 관리하는 고척스카이돔과 장충체육관도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고척스카이돔과 장충체육관이 남긴 수익은 각각 45억원과 5억원이다. 특히 적자투성이였던 장충체육관의 변신이 주목할 만하다. 과거 민간기업이 위탁운영을 할 때는 매년 5억원가량의 적자가 났지만 2014년 서울시설공단이 경영을 맡은 뒤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프로배구 구단을 유치하고,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시민들이 찾을 만한 장소로 바뀌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게 됐다.
서울시는 현재 리모델링이 한창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의 수익모델 발굴에도 힘쓰고 있다. 상점과 유스호스텔, 주민 생활체육시설 등이 합쳐진 복합시설로 개발해 수익 창출이 가능하면서도 공공시설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2003년 지자체 중 유일한 오페라 단일극장으로 설립한 대구오페라하우스는 명실상부한 지역 대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관람객은 7만2399명으로, 89억805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관리 비용이 92억5550만원 들어가 2억7500만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지만, 대중에게 생소할 수 있는 오페라 공연 위주의 공간이란 점을 고려하면 양호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평가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저렴한 가격의 기획공연과 고품격 대형 오페라들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며 오페라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매년 가을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리는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평균 객석 점유율이 90%가 넘고, 5만여명의 관객이 찾는다.
대구시는 대구오페라하우스를 통해 국제적인 오페라 도시로서의 브랜드를 확고히 한다는 목표다. 대구오페라하우스 관계자는 “향후 경영개선을 위해 대관사업을 늘리고, 협찬사를 발굴하는 등 수익모델을 다각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 생활SOC사업, 취지 제대로 살리려면
◆정책 목표 맞추려 ‘허겁지겁’… “기획단계부터 주민 참여를”
문재인정부는 국정과제인 ‘생활밀착형 사회기반시설 복합화사업’(생활SOC 사업)과 관련해 올해부터 2022년까지 국비 30조원 등 48조원을 투입해 생활SOC를 대폭 확충하기로 했다. 생활SOC 사업은 공공도서관과 체육·생활문화센터 등 주민 ‘여가활력’(국비 14조5000억원) 분야 공공시설을 비롯해 어린이·취약계층 돌봄시설, 공공의료시설, 우수저류시설 등 ‘생애돌봄’, ‘안전안심’ 분야 시설 등을 건립해 운영하는 것이다. 지역공동체 형성을 위한 생활혁신공간을 구축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정부가 정책 목표를 맞추기 위해 시설 유치 지역 선정이나 예산 배분 등을 서두르고 지방자치단체는 일단 국비 사업부터 따내고 보자는 움직임이 적지 않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생활SOC 장점 많지만… 추진 상황 우려도 적잖아
28일 국무조정실과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따르면 정부는 이르면 10월쯤 ‘2021년 생활SOC복합화 사업’ 지원 대상을 선정한다. 생활SOC복합화 사업은 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 국민체육센터, 생활문화센터, 국공립 어린이집, 주민건강센터, 다함께돌봄센터, 공동육아나눔터, 가족센터, 주거지주차장 등 10종의 시설 가운데 2종 이상을 같은 부지에 건립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엔 각 지자체 신청을 받아 2020년 지원 대상으로 172개 시·군·구 289건을 선정했다.
시설 복합화는 부처·사업별 칸막이 현상은 물론 지자체의 부지 선정이나 공공시설 이용의 효율성을 해결할 방안으로 평가된다. 예컨대 한 지자체가 생활문화센터와 돌봄센터, 공동육아나눔터가 함께 있는 시설 건립을 신청해 선정되면 국조실이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통으로 지원한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부지 확보 부담이나 행정 비용을 덜뿐더러 개별시설보다 국고보조율을 10%포인트 더 받을 수 있어 이득이다.
국조실 관계자는 “지자체가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 균형위와 각 부처, 지자체가 검토, 협의, 조정을 거쳐 투자협약을 맺은 뒤 예산을 배정하는 프로세스”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자체의 과잉 투자 우려와 관련해 “심의 과정에서 시설 및 투자 규모의 적정성 등을 평가하는 데다 시설 종류별로 국비 보조 한도를 정하고 있다”고 가능성을 작게 봤다.
중앙정부 심사, 선정, 예산 배정 과정에서 지자체의 과잉·중복 투자 여지를 걸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보다 촘촘한 집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생활SOC 사업과 관련해 지자체 컨설팅과 교육, 선정에 관여한 진영효 두리공간연구소장은 “지자체를 방문할 때마다 ‘크게 짓지 마시라’고 당부하는데도 대부분 보조금을 최대치로 받을 수 있는 규모로 신청한다”고 우려했다. 진 소장은 특히 “적정한 투자와 내실 있는 운영을 위해선 2∼3년 정도 준비를 해야 하는데, 생활SOC복합화 사업계획서가 공고 후 2∼3개월 만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균형위가 각 지자체에 주민 의견 수렴과 시설 수요 조사를 요구하고 있지만 지자체가 마음만 먹으면 수요는 얼마든지 부풀릴 수 있다는 게 진 소장의 설명이다. 생활SOC복합화 사업이 실제 시설이 필요한 지역이 아닌 예산에 맞춰 배분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사업 기획·집행·운영 전 단계에서 지자체와 주민, 전문가 함께 해야
이창섭 원광대 교수(도시공학)는 생활SOC의 경우 기획단계에서부터 사업 집행, 시설 운영까지 지자체와 주민, 전문가들이 함께 논의하고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단체장은 임기 내 실적을 내기 위해 시설 유치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고 주민들은 지역공동체의 이익보다는 본인 이해관계에 더 신경 쓰는 측면이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전문가가 중심이 돼 시설을 설계하면, 지자체가 구체적 행정절차를 진행하고, 역량이 되는 주민들이 운영을 맡는 등 주체별로 소통과 협업,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시설 운영 시 지역 주민들이 적극 참여하고 이용할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진 소장은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 수준과 분야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며 “지역커뮤니티가 작은도서관이나 공동육아나눔터와 같은 공공시설을 운영하면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공공시설 운영에 대한 주민들의 참여를 끌어내고 역량을 높여주는 교육 프로그램 등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생활SOC 를 통해 주민들이 참여하고 주도할 공간이 마련되는 만큼 어떻게 하면 내실 있게 운영할 수 있는지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美·日 ‘생활SOC 모범 사례’ 살펴 보니
#일본 오타와라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2000년 들어 다른 지역으로 빠져 나가는 사람이 늘더니 2008년부터 그 속도가 빨라졌다. 약 20년 전인 1989년과 비교하면 인구가 무려 30%나 줄어들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오타와라시는 고심 끝에 대책을 마련했다. 바로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생활SOC(사회기반시설)사업이다. 오타하라시는 사업비 38억7200만엔(435억원 상당)을 들여 7층짜리 생활SOC복합화 건물을 세웠다. 이 건물에는 육아지원시설과 시민활동시설, 도서관 등이 들어섰다. 돋보이는 것은 건물 자체보다 운영 주체와 방식이다. 주민들로 구성된 마을기업이 건물을 관리하고 운영 방안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한다. 운영비도 1층에 자리한 상업시설에서 받은 임대료 등으로 수익을 내 충당한다.
#미국 오하이오 레이크우드시. 예체능 시설이 부족했던 레이크우드시는 새로운 건물을 짓는 대신 학교와 사무실 등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커뮤니티센터를 만들었다. 미술·연극·무용·음악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커뮤니티센터에선 매년 6만5000명 이상이 문화예술수업을 받는다. 수업 결과물은 한데 모아 전시하거나 무대에 올린다. 이 전시회는 ‘윈윈(win-win)’ 효과를 거둔다. 지역 주민은 부담스럽지 않은 유료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센터는 기부금과 회비, 입장료 수입 등으로 운영하며, 이 덕에 수업료를 한 푼도 받지 않는 교육도 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생활SOC시설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지만 효율성과 이용률은 선진국 수준엔 여전히 미치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혈세 먹는 하마’로 전락하다시피 한 상당수 지방 SOC시설의 운영 정상화를 위해선 주민 주도형 경영과 정기적인 수입 방안을 마련한 해외 모범사례를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해외의 모범 사례를 살펴보면 우선 인구 규모나 지역 특성 등을 충분히 반영한 적정 규모의 생활SOC시설을 짓는다. 인구에 비해 지나치게 큰 규모의 시설을 운영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결국 적자를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운영한다. 주민이 주체적으로 나서 의견을 제시하고 경영까지 참여하도록 돕는다.
주민의 성향이나 취향을 프로그램에 반영해 이용률도 높다. 설문조사와 공청회, 설명회 등을 통해 의견을 정기적으로 나누고 아이디어를 모으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역사회의 작은 기관이나 동아리, 모임도 적극적으로 생활SOC시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할인 혜택을 준다.
생활SOC시설의 경영 기반도 안정적인 편이다. NGO로부터 후원을 받거나 일부 공간을 상업적으로 활용해 수익을 낸다. 국내 시설들이 대부분 주민 이용률이 낮아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에 의존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관계자는 “생활SOC시설은 단순히 기능과 시설이 집적되어 있는 장소를 넘어 주민이 활동과 교류를 하는 장소로서 의미가 있다”며 “좀 더 적극적으로 주민이 생활SOC시설에 참여할 방안과 양질의 콘텐츠를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송민섭·김유나 기자, 광주·용인·천안·울산·익산·대구·안동=한현묵·오상도·김정모·이보람·김동욱·김덕용·배소영 기자 st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