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선] 생태감수성 부족한 ‘그린뉴딜’

‘밤낮의 길이가 똑같아지는 춘분 이후로는 고개만 살짝 내밀었던 기린초의 싹이 불쑥 올라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다. 해가 진 뒤에도 아직 잔 빛이 남아 있고 …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가 늦게까지 일광욕을 한다. 풍족하게 먹어 배부르고 따습다. … 겨울에 발육과 성장을 하는 특별한 생활사 덕분에 천적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으므로 그들에게 혹한은 축복이었다.’(이강운 ‘붉은점모시나비와 곤충들의 시간’)

강원도 횡성에는 축구장 14개 크기만 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라는 곳이 있다. 홀로세는 인류가 경작을 시작한 1만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는 지질시대인데, 사람 등쌀에 못 이겨 멸종위기에 처한 곤충을 복원·보호하고자 이강운 소장이 23년 전 만들었다. 그가 최근 책을 냈다 해서 반가운 마음에 읽어보니 빙하기 생존전략을 여태 간직한 붉은점모시나비를 중심으로 연구소와 그 주변에 사는 곤충과 식물의 생태가 육아일기처럼 기록돼 있었다.

윤지로 특별기획취재팀 차장

몇년째 환경 기사를 쓰지만 아직도 곤충과 식물을 보면 ‘악!’ 또는 ‘와!’밖에 할 말이 없는 미천한 지식이 새삼 부끄러워졌다. 얼마 전 ‘기후위기 도미노를 막아라’를 연재하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말없이 스러져가고 있는 동식물에는 미처 관심 갖지 못했구나 하는 반성도 했다.



한껏 올라간 생태감수성을 갖고 그린뉴딜 계획을 다시 살펴봤다.

전 교실 와이파이 구축, 악취관리 시범사업, 전선·통신선 지중화… ‘이것도 그린뉴딜?’ 싶은 사업까지 쓸어담았지만, 생태부문은 공란에 가까웠다. 국립공원·도시공간 훼손지 생태복원, 우리나라 고유 멸종위기종 보존이라는 원론적인 내용이 전부였다.

지금 당장 환경과 경제를 살려야 할 시점에 아고산(해발 1500∼2500m) 침엽수와 물장군, 왕은점표범나비를 걱정하는 건 너무 한가한 일이라 생각한 걸까. 이런 생각으로 유럽 그린딜을 본다면 적잖이 당황할 것이다.

유럽연합(EU) 그린딜 홈페이지에는 생물다양성이 제일 먼저 올라있다. 사람 때문에 40년간 야생동물 개체수가 60% 줄었다는 윤리적 당위성에 그치지 않고, 건축·농업 등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이 자연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래서 연간 200억유로(약 28조원)를 들여 유기농 재배면적을 늘리고, 살충제 사용은 절반으로 줄이고, 나무 30억그루를 심기로 했다. 2만5000㎞의 강을 자유흐름 상태(free-flowing state)로 복원하는 내용도 담겼다.

하기야 한국에선 4대강 조사·평가기획위원회에 대통령 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까지 만들어 놓고 여태 아무 결정도 못 내리는 실정인데 곤충, 꽃, 나무까지 굽어살피길 기대하는 건 무리일지 모르겠다.

지난 16일 환경부·산업부 장관의 그린뉴딜 브리핑에선 질의응답까지 합쳐 ‘생태’라는 단어가 10번 언급됐다. 그중 7번은 산업생태 같은 파생적 의미로 쓰였고, 3번만 본래 단어로 등장했다. 10번 중 3번, 30%, 100점 만점에 30점…. 어쩌면 정책 결정자들의 생태이해 수준도 딱 이 정도가 아닐까.

 

윤지로 특별기획취재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