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역사-8월3~9일] 프랑코의 ‘스페인 외전(外戰)’

1939년 8월 9일 프랑코가 스페인의 국가주석(총통)에 취임한 것은 그가 스페인 내전에서 완전히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외전(外戰)’이 남아 있었다. 내전을 통해 ‘파시스트’로 낙인찍힌 그는 2차 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상황에서 미·영 등 연합국과 독·이 등 파시스트 국가들 사이에서 줄타기해야 할 판이었다. 실은 ‘내전’도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전쟁 자체는 끝났으나 좌파들의 떼죽음은 1975년 프랑코가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1940년 스페인을 방문한 한 독일 고위층도 그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 그 인물은 공교롭게도 게슈타포 총책으로 훗날 홀로코스트를 지휘할 하인리히 힘러였다.

결과적으로 프랑코는 홀로코스트의 선배가 된 셈이었다. 이 스페인 판의 홀로코스트는 가톨릭의 ‘축복’을 받으며 자행된 점이 특이하다. 가톨릭계와 보수언론은 “병적인 요소들의 척결과 정화”라며 찬사를 보냈다.

그래선지 프랑코는 하늘의 도움을 받은 듯 운도 좋았다. 유럽 강대국들이 2차 대전의 상황에 몰려 그의 이런 학살에 눈길을 주지 않은 것이 그 첫 번째 행운이었다. 2차 대전이 끝나도 그의 행운은 이어졌다.

파시스트 국가들을 짓밟고 승리한 연합국이 스페인 내전 당시의 파시스트적 만행도 응징해야 할 시점에 냉전이 시작된 것이 그것이다. 그 바람에 연합국이 오히려 스페인에 추파를 던지는 모양새도 비쳤다.

여기엔 프랑코의 성품도 한몫했다. 프랑코라면 누구나 “나는 신과 역사 앞에만 책임을 진다”는 어록을 떠올린다. 그 어록에 비친 프랑코는 타협의 여지가 없는 근엄의 화신 같지만 그는 강자 앞에서는 비굴할 줄도 알고 교활한 면도 있었다. 그래서 히틀러에게 묶이지도 않고 연합국에 찍히지도 않은 채 난국을 벗어날 수 있었다.

양평(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