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단행된 검찰 고위간부 인사는 '검언유착 의혹' 사건 책임론 등 검찰 수사를 둘러싼 각종 논란과 정치적 공방을 정면돌파 하겠다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추 장관과 대립각을 세워온 윤석열 검찰총장의 고립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이날 검사장급 이상 간부 26명의 승진·전보 인사를 오는 11일 자로 단행했다. 이번 검찰 인사는 추 장관 취임 후 두 번째다.
이성윤(58·사법연수원 23기) 서울중앙지검장은 유임됐고, '채널A 강요미수 의혹' 사건 수사를 지휘한 이정현(52·27기)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법조계에서는 친정부 성향이거나 이 지검장 측근이 승승장구했다는 평이 나온다.
반면 윤 총장의 측근이나 '특수통' 간부들 상당수가 좌천되거나 제자리에 머물렀다. 특수통인 주영환(50·27기)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등은 승진 인사에서 탈락했다.
추 장관은 채널A 사건을 '검언유착'으로 규정하며 수사지휘권까지 발동했지만,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이동재(35) 전 채널A 기자를 기소하면서 윤 총장 측근인 한동훈(47·27기) 검사장과의 공모 혐의를 밝히지 못해 정치권 등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제기됐다.
윤 총장이 '측근 감싸기' 논란 속에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강행하다가 철회하면서 대검찰청 지휘부와 수사팀 간 갈등도 깊어졌다. 수사 결과를 두고는 추 장관과 이성윤 지검장, 수사팀이 정치적인 수사를 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추 장관은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지검장을 유임해 신임을 재확인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차기 검찰총장 1순위로 꼽히는 이 지검장은 고검장으로 승진하지 못했지만, 동기인 윤 총장에 대한 견제 역할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이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사건과 채널A 사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소 정황 누설 의혹 사건 등 청와대·여권에 부담인 사건을 다수 맡고 있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해석된다.
서울중앙지검에서 이 지검장과 호흡을 맞춰온 이정현 1차장과 신성식(55·27기) 3차장이 모두 승진한 것도 이 지검장에 대한 신임을 표시한 인사라는 해석에 무게를 더한다. 이 1차장은 공공수사부장, 신 3차장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대검 참모진에 합류하게 됐다.
조남관(55·24기) 법무부 검찰국장이 대검 차장(고검장급)으로 먼저 승진해 차기 검찰총장 자리를 두고 이 지검장과 경쟁하는 구도가 됐다는 말도 나온다. 채널A 사건의 후속 처리가 이 지검장 거취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친정권 인사로 분류되는 조남관 국장이 대검 차장, 심재철(51·27기)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 법무부 요직인 검찰국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 지검장과 함께 윤 총장을 턱밑까지 압박하는 모양새라는 분석도 있다.
서울중앙지검 이정현 1차장과 신성식 3차장이 각각 대검 공공수사부장과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승진하면서,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국장을 포함해 이른바 검찰 내 요직인 '빅4'를 모두 호남 출신이 차지하게 됐다.
윤 총장을 보좌한 대검 참모진 대부분이 또 6개월 만에 교체된 것도 눈에 띈다. 추 장관은 지난 1월에도 강남일 대검 차장을 비롯해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과 박찬호 공공수사부장 등 참모진을 모두 6개월 만에 교체했다.
이정수 기획조정부장과 외부 개방직인 한동수 감찰부장은 유임됐다. 법무부는 수사권 개혁 등 후속 조치를 위해 기조부장을 유임하고, 인권기능 재편 등에 따른 외부 개방직 가능성 등을 열어두고 인권부장은 공석으로 뒀다.
윤 총장의 측근 또는 '특수통'으로 분류되는 간부들은 이번 인사에서 좌천성 전보가 이뤄지거나 잔류했다. 강남일 대전고검장과 윤대진 사법연수원 부원장 등은 자리를 지켰고, 한동훈 검사장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유지했다.
여환섭 대구지검장은 광주지검장, 조재연 수원지검장은 대구지검장으로 옮겼다. 문찬석 광주지검장은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사실상 좌천성 전보됐다.
이런 기조는 이달 중후반으로 예상되는 고검검사급(차장·부장검사)을 대상으로 한 중간간부 인사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등 주요 사건을 담당하는 일선 검찰청의 수사 책임자 교체 인사가 예상된다.
대검 차장, 서울중앙지검장 등과 차기 총장 후보군인 서울고검장은 조상철(51·23기) 수원고검장이 맡는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고검장에게 분산하는 권고안을 내놓으면서 향후 중요해질 자리다.
형사·공판부 경력이 풍부한 검사 우대 방침에 따라 이철희(54·27기) 광주지검 순천지청장과 이종근(51·28기) 서울남부지검 1차장, 김지용(52·28기) 수원지검 1차장 등이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고경순(48·28기) 서울서부지검 차장은 능력과 자질을 인정받아 역대 네 번째 여성 검사장이 됐다. 역대 여성 검사장은 조희진 전 동부지검장, 이영주 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현직인 노정연 서울서부지검장(전 전주지검장) 등 3명뿐이었다.
추 장관의 한양대 법대 후배인 고 차장은 서울중앙지검 공판3부장,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장, 대전지검·서울북부지검 형사2부장, 수원지검 안산지청 차장 등을 지내고 이번에 대검 공판송무부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승진 인사는 지역 안배를 고려한 부분도 엿보인다. 고검장 승진(2명)은 호남과 영남이 각각 1명이다. 검사장 승진(6명)은 호남(2명)과 영남(2명). 서울(1명), 충청(1명) 등 골고루 분포됐다.
한편 윤 총장의 '독재'와 '전체주의 배격' 등 여권을 겨냥한 듯한 작심 발언이 도화선이 돼 민주당이 연일 '윤석열 때리기'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윤 총장의 해당 발언이 나온 지 나흘 뒤인 7일에도 윤 총장에 대해 사퇴를 언급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다만 지도부에서는 윤 총장에 대한 언급 자체를 삼가고 있다. 설 최고위원의 사퇴 요구도 지도부가 아닌 개인 차원의 의견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이는 지도부 차원에서 윤 총장에 대해 비난 대응을 하는 게 자칫 여론의 역풍을 부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오히려 윤 총장의 몸집만 불려줄 수 있다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에게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