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등장한 지 2년 반, 기대와 달리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사회 곳곳의 단면을 마주한 심경은 복잡했다. ‘미투, 그 이후의 삶’ 특별기획을 준비하며 취재팀이 만난 16명의 피해자들은 성폭력을 대하는 시선이 달라질듯 달라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변한 것은 목소리를 내는 피해자와 이에 연대하는 시민이 늘었다는 점이다. 미투의 확산을 보며 ‘나만 겪은 일이 아니다’, ‘가해자가 처벌받는 것이 맞다’는 확신을 얻었다는 이들이 많았다.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지만 투쟁하며 얻은 정보와 용기를 나누며 피해자들의 조력자로 새 인생을 사는 이들도 만났다.
그러나 개개인이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었다. 체계적으로 피해자를 지원해 줄 수 있는 단체는 여전히 부족하다. 관련 부처나 사법기관, 회사와 학교 등의 조직은 ‘피해자 보호’에 적극 나서기보다 서로 책임을 떠미는 방어적 태도와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투 이후 마련된 대책, 직장 내 성희롱 매뉴얼 등이 유명무실해진 이유다. 결과적으로 사회가 해야 할 일을 몇몇 개인의 희생에 기대어 메우는 형편이 됐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다른 피해자가 생기기 전에 가해자를 멈추게 하고 싶어서” 폭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발 뒤에는 미투라는 낙인이 따라붙었다. 인터뷰를 요청하면서도 매번 마음 한편이 불편했던 이유다. 위로와 보호를 받아야 할 피해자에게 오히려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는 것 같았다.
미투 이후 따라오는 2차 가해도 상상을 초월했다. 어렵게 인터뷰가 성사됐다가도 취소되는 일이 허다했던 건 그래서였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연락이 오가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불안감이 생생히 전달됐다. 유명인은 쏟아지는 악플 세례에, 일반인은 직장에서의 가혹한 보복에 괴로워했다. 권력자인 가해자는 자리를 지키며 별 탈 없이 살고, 힘없는 피해자는 조직을 떠나는 결말이 흔했다.
우리 사회는 아직 피해자가 어렵게 낸 용기에 화답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험난한 여정에 힘이 되긴커녕 2차 피해를 방조하거나 가담하고 있다. ‘피해자는 일상으로!’라는 말이 구호에 그치는 현실이 착잡하고 미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