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일째 장마가 이어진 지난 5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주택가. 재건축 공사가 한창인 이곳 공사장 주변으로 비슷하게 생긴 붉은 벽돌 집들이 가파른 언덕에 모여 있었다. 2∼3층짜리 집에 집주인과 세입자들이 사는 다세대주택들이 많았다. 꼭대기 층에 주인집이 있고 지상에서 반지하까지 세입자가 모여 사는 형태였다.
한만희(75)씨는 이곳의 한 반지하 주택에서 96세 노모와 함께 살고 있다. 한씨의 집은 주택 마당에서도 잘 보이지 않았다. 1층 복도 아래에서 몸을 반쯤 드러낸 한씨가 취재진을 먼저 발견해 집으로 안내했다. 네 칸의 계단을 내려가 철문을 열자 3평 남짓한 방 안에서 노모 정옥순(96)씨와 14살 된 반려견 ‘찌루’가 반겼다.
한씨의 경우처럼 반지하 주택은 환기와 통풍이 되지 않아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최근 이어지고 있는 집중호우에 따른 침수 등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한국도시연구소가 반지하 주택이 밀집한 경기 시흥시 대야동·신천동 500가구를 대상으로 주거실태를 조사한 결과 수해를 경험한 가구가 53.1%로 절반을 넘었다. 수해를 한 차례 경험한 가구(28.3)가 가장 많았지만 7회 이상 경험한 가구도 3.2%에 달했다. 지상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탓에 겪는 불편도 컸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의 문제로 곰팡이를 꼽은 응답자는 61.4%로 가장 많았고, 채광 부족(59.4%), 환기 문제(52.4%)도 절반 이상이 지적했다.
무엇보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시흥시 반지하 조사에서 이들 가구 중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 비율은 14.4%로 시흥시 평균(4.0%)보다 3배 이상 높았다. 기초연금으로만 생활하고 있는 한씨도 올해 초 2000만원인 보증금을 1000만원을 올려달라는 집주인 요구에 쫓겨날 위기를 맞았다. 한씨는 집주인과 합의한 끝에 보증금은 올리지 않고 매달 10만원을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곳 주민이 건강과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만큼 공공임대주택 등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과)는 “반지하는 원래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공간이었다. 비만 오면 물에 잠기는 주거환경을 개선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며 “결국 반지하에 주거하는 사람들을 지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반지하 주민도 공공임대주택에 우선 입주할 수 있도록 대상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글·사진=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