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에 집중호우가 이어지며 인명·재산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어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장마가 6월24일 시작된 후 47일째 이어지며 38명이 숨지고 12명이 실종됐다. 2011년 이후 9년 만에 가장 큰 피해다. 이재민은 11개 시도에서 3400여가구, 5900여명에 이르고 시설피해도 9400여건으로 집계됐다. 수마가 할퀸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는데 제5호 태풍 ‘장미’가 오늘 남해안에 상륙한다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처럼 피해가 큰 것은 장마가 유례없이 길어진 탓에 지반이 약화돼 산사태까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제 하루 동안 발생한 산사태만 무려 55건에 달한다. 7일 전남 곡성에서는 산사태로 주민 5명이 숨졌고 전북 장수, 경남 거창 등지에서도 유사 사고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산림청은 전국 16개 시도의 시군구 81곳에 산사태 경보·주의보를 발령했다. 정부의 늑장대응이 화를 키우는 게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지난 3일 오후에야 풍수해 위기경보 중 가장 높은 수준인 ‘심각’으로 격상했다. 1일 이후 사망·실종자가 17명에 이르고 이재민이 800명을 넘어선 뒤였다.
태풍 탓에 내일까지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리고 중부지방에는 최대 500㎜ 이상의 물폭탄이 쏟아진다고 한다. 통상 과거 기록을 보면 태풍이 장마보다 더 큰 피해를 야기했다. 지난해 태풍 7개가 한반도에 영향을 미쳐 16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어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선제 대처해달라”고 했지만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비상한 각오로 상습 침수지역이나 산사태 등이 우려되는 위험지역에 대해 사전에 충분한 안전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동일한 피해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항구적인 복구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급한 일이다.
기상청조차 예측을 제대로 못 하는 이번 폭우는 기후변화에 기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동토 시베리아의 이상고온 현상으로 시베리아 동쪽에 생성된 찬 공기에 가로막힌 장마전선이 한반도에 머물며 물을 퍼붓고 있다는 것이다. 해가 갈수록 집중폭우·폭염은 더 심해질 게 불 보듯 뻔하다.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사용과 발생량을 줄이기 위한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정부는 국민과 함께 혁신적이고 비상한 기후변화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미래 세대에게 만성적인 폭우 피해까지 유산으로 물려줘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