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금주의공감산책] ‘장마블루’까지 덮친 우울한 사회

장마에 계절성 정서장애 증가
홍수로 삶의 질 현저히 나빠져
코로나에 자연재해 겹쳐 불안
복구와 함께 심리 대책 병행을

살갗을 태울 듯한 8월의 태양 볕이 지속되면 이청준의 단편소설 ‘불의 여자’처럼 우리는 비를 간절히 기다리게 된다. 시원한 비가 내리게 되면 상큼함을 느낄 수 있다. 대지를 적시는 비의 신선한 냄새가 너무 좋다. 비가 가져오는 특유의 향인 ‘페트리코’(petrichor) 때문이다. 비가 내리기 전, 비가 내린 후, 사실 비가 올 때 나는 냄새는 마른땅이 젖으면서 나는 특유의 흙냄새다. 비 자체에 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비가 내리면서 마른땅을 적시거나, 바위에 부딪치면서 나타나는 독특한 화학반응 때문이다. 비가 땅을 적시면서 새 생명을 깨우는 이 향은 향수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

또한 비가 오면 부침개와 막걸리 생각이 나고,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지금도 보고 싶은 그때 그 사람’으로 전화기를 만지작거리게 된다. 그러나 지속되는 장마는 그렇게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햇빛이 없게 되면 인간은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낀다. 날씨가 나쁠 때, 춥거나 비, 눈, 구름이 많은 날씨에는 짜증이 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우울감, 피곤함이 더해지고 계속 졸리다 보니 아침에 늦게 일어나기도 한다. 비가 오면 일조량이 적어지고 세로토닌과 멜라토닌 분비량에 혼선이 오게 된다. 흐린 날씨로 인해 햇빛에 적게 노출되다 보니 잠과 연관된 멜라토닌 리듬이 깨지고 그 결과로 피로감이 커진다. 세라토닌은 뇌에서 나오는 호르몬으로 멜라토닌과 마찬가지로 빛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항우울성 약에 쓰일 정도로 세로토닌은 기분이나 감정과 연관된 호르몬이다. 일시적으로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기분이 저하되는 정도에서 심각할 경우 우울증으로 발전되기도 하고 극단적으로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날씨에 따라 감정에 영향을 받는 계절성 정서장애 (SAD: seasonal affective disorder) 증상이다. 겨울에 비가 많은 북미와 유럽에 사는 사람 10명 중 적어도 한 명은 경험하는 장애이다. 또한 미국 인구의 약 5%가 심각한 수준으로, 14%가 약한 수준의 계절성 정서장애를 경험한다. 구름이 많이 끼고 비나 눈이 많아 일조량이 떨어지는 겨울에 많이 발생하며 미국의 시애틀이나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흔한 정서장애다.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인공적인 빛을 쪼이는 광선요법(light therapy)도 개발되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 심리학

또한 이러한 우울한 기분은 미래에 대한 전망과 위험에 대한 인식을 왜곡시켜 정확한 정보가 부족한 추상적 의사결정에 있어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렇게 기분이 사람들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기분 휴리스틱 (affect heuristic)’이라 한다. 그 예로 허슬라이퍼와 슘웨이 (Hirshleifer & Shumway)의 행태경제학 연구에 따르면 일조량이 떨어지면 주가도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



최근 우리나라에 계속 뿌리는 비의 양은 어마하다. 6월24일 시작된 장마는 지금까지 50일 가까이 계속되며 1년 내릴 비의 절반이 8일 만에 쏟아졌다고 한다. 이재민은 전국적으로 6000명(9일 현재, 3489가구)에 달하고 사망자는 38명, 실종자는 12명 이상이 된다고 한다.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긴 장마와 홍수로 인한 자연재해로 인명이나 재산 피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전세계 각국에서 홍수가 인간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심리적 건강과 관련된 삶의 질은 홍수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 현저하게 더 나빴다. 미국의 경우 홍수 후 3주 동안 향정신성의약품 처방이 증가했다. 호주에서는 홍수에 노출된 후 담배나 알코올 사용의 증가를 보고하기도 했다. 캐나다에서는 홍수가 발생한 지 2년 후, 사람들은 더 높은 수준의 우울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 심리적 고통, 더 낮은 적응력을 보였다. 한국의 경우도 홍수 발생 후 18개월 뒤 정신건강과 관련한 삶의 질이 상당히 저하된다는 통계 결과도 있다. 프랑스, 중국 등의 결과도 비슷하다.

비에 대한 기억과 미래 홍수에 대한 걱정, 홍수로 피해 본 집과 장소의 의미, 이 장소와 관련된 기억들, 집과 다른 개인적 소유물의 손실은 정신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2차 피해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보험이나 건설회사와의 분쟁이 극심해지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문제를 유발하게 된다. 경제적 문제 및 고용문제도 커지면서 정부에 대한 원망은 극대화되고 신뢰 상실을 초래할 수 있다.

코로나에 이어 긴 장마로 인한 ‘장마 블루’까지 겹치면서 우리 사회는 심리적으로 점차 다운되는 것 같다. 해가 보이지 않는 이 나날들이 정치, 경제적으로 우리 사회의 희망을 더욱 가리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 올해와 같은 장마와 홍수는 그저 여름 잠깐 우리에게 찾아오는 계절적 특징이라고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연재해에 따른 정신적 피해는 이후 몇 년간 지속될 수도 있기 때문에 좀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우울함을 떨칠 수 있는 나름의 작은 노력들이 필요하다. 집 안에서 전등이라도 환하게 밝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서 나름의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껴 보는 것도 좋다. 또한 지역사회에서는 수해지역의 환경보건을 위해 신속한 복구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환경 복구만이 아니라 그 지역 수해민의 심리적 회복을 위한 장기적 대책 또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 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