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 위에서 바라보는 해질녘 세비아 거리는 말들의 경쾌한 발걸음만큼이나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고색창연한 세비아성당과 귀족 정원 같은 마리아 루이사 공원, 공원 안에 별궁처럼 자리한 스페인 광장의 모습이 방금 전에 경험한 것과는
전혀 다른 여유로움으로 다가온다. 뚜벅이의 수고로움을 덜어내고 편안한 시트 위에 기대어,
중세 한적한 도시를 여행하는 공작부인 마냥 여유를 즐겨본다.
마냥 즐길 수 없는 마차를 뒤로하고 숙소로 잡은 호텔 근처 쇼핑거리로 나선다.
낯선 나라에서 만나는 익숙한 브랜드들이 반갑다. 굳이 물건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익숙한 브랜드의 새로운 상품을 접하고 낯선 브랜드 물건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쇼핑거리를 둘러보는 사이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가던 하늘은 점차 보랏빛이 더해간다.
저녁에는 호텔에서 열리는 플라멩코 공연을 감상하기로 했다. 1층 로비는 벌써부터 스페인 정취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로 메워져 있다. 호텔 바를 배경으로 춤을 추는 무희와 기타를 연주하는 두 남자가 공연을 시작한다. 동굴 무대에서 공연이 이뤄지던 그라나다에서의 경험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세상을 떠돌던 집시 공연이 장소를 가리지는 않았겠지만 현대식 호텔에서 벌어지는 공연은 다소 이질적인 느낌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공연이 시작되자 공간은 순식간에 변한다. 기타 선율과 리듬을 맞추는 박수소리가 빨라지고 무희의 현란한 춤이 절정을 향해 갈수록 주변 공간은 그라나다 동굴처럼 본능적인 열정으로 가득 찬다. 장소와 시간을 구애받지 않고 주변을 열정으로 가득 채워 버리는 플라멩코의 매력 속에 세비아 밤이 저문다.
론다 협곡을 가르는 다리는 모두 세 개인데 그 가운데 가장 나중에 건설된 누에보(Nuevo) 다리가 가장 유명하다. 스페인의 건축가 마르틴 데 알데우엘라가 설계해 1793년에 완공된 이 다리는 무려 40년의 세월을 걸쳐 건설되었다고 한다. 40년이 걸릴 만큼 18세기에 협곡 위에 다리를 세우는 과정은 매우 고단했으며 수많은 사상자가 있었을 거다. 건축가 자신조차 완공을 기념해 자신 이름을 아치에 새기려다 협곡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고 하니 가히 상상이 간다. 건설이 어려웠던 만큼 100m 아래 협곡 바닥까지 닿아 있는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스페인을 소개하는 사진에 가장 많이 등장한다고 하니 전 세계 관광객들의 방문 목적이 누에보 다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아름다움 이면에는 스페인 내전의 아픔도 서려 있다. 내전 당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전투가 발생했고 수많은 사상자를 남겼다. 스페인 내전에도 참전했던 헤밍웨이는 이곳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저술했다고 한다. 그 외 릴케 등 수많은 유럽 문인들이 애정을 드러낸 론다를 만나볼 차례다.
절벽 위에 위치한 호텔의 테라스에서는 누에보 다리가 보인다. 체크인을 서두르고 절벽을 내려다보는 테라스 카페에 앉아 시원한 스페인 맥주 한잔으로 한낮의 열기를 식히고 누에보 다리를 사진에 담으며 첫 만남을 시작한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