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힘든데 장마까지… ‘우울에 갇힌 일상’

여름 휴가철 여행커녕 ‘강제 집콕’
인간관계마저 소원… 무력감 호소
반년새 우울증 상담 37만건 ‘훌쩍’
“낮시간 조명 켜고 가벼운 운동 해야”
사진=연합뉴스

“방학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계획했던 해외 어학연수도 못 가고 외출도 자제하며 집 안에서만 지내는 중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까지 끝을 모르고 쏟아지니 강제로 집 안에 감금된 기분이 들어 의욕이 사라지고 무력감이 들어요.”

 

대학생 김모(22)씨는 몇 주째 계속된 장마에 황금 같은 여름방학을 집 안에서만 보내고 있다. 장마철이 유례없이 길어지며 인간관계마저 뜸해졌다. 김씨는 “비가 너무 온다는 이유로 이번 주에만 저녁 약속이 두 번 취소됐다.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에 조금 적응해 가던 찰나에 장마가 이어지니 주변 사람들도 다들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외부활동을 자제하며 우울감을 호소하는 소위 ‘코로나 블루(우울)’가 계속되는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마마저 최장기간 이어져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길어진 장마는 비로 인한 우울증인 ‘레인 블루’의 확산을 불렀다. 장마로 인해 휴가를 망친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박모(26)씨는 이달 1일부터 9일까지였던 휴가기간 내내 집에만 머물렀다. 박씨는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고 사람이 몰리는 제주도도 포기했다. 당일치기로 춘천이라도 가보려 했더니 비가 쏟아져 운전도 위험할 것 같고, 가봤자 아무것도 못할 거 같아 결국 집에만 있었다”며 “이미 내버린 휴가를 무를 수도 없고 올해 휴가는 망했다는 생각에 매우 울적하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1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이달 3일까지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서 진행된 우울증 상담 건수는 전국적으로 총 37만4221건으로 집계됐다. 반년 만에 지난해 한해 동안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이뤄진 우울증 상담 건수 35만3388건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올해 코로나19가 지속되는 상황에다 최근 장마까지 겹치면서 우울증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장마철에는 습한 날씨로 인해 피로감도 들고 일조량이 적어지며 세로토닌과 멜라토닌 등 호르몬 분비량에도 혼선이 생겨 우울증 위험이 커진다”며 “올해는 코로나19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할 만하니 장마가 이어져 ‘산 넘어 산’이라는 좌절감이 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특히 홍수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의 경우 수년에 걸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같은 심각한 정서적 피해를 겪을 수 있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심리적 돌봄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장마 우울’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만 럭스(lux) 이상의 강한 빛을 쬐면 항우울제만큼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만큼 낮 시간에도 조명을 켜 두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어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신체활동을 하는 것이 우울증과 불면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낮에 누워 있으면 우리 뇌는 그 시간 동안 잠을 잔 것으로 친다. 수면-각성 리듬이 깨지며 악순환이 생기기 쉬워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백 교수는 또 “코로나 심리방역과 똑같이 장마철 심리방역도 필요하다”며 “이상이 있다고 느껴지면 정신건강 복지센터로 전화상담(1577-0199)을 꼭 받아보시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박지원·유지혜 기자 g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