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초 광주 광산구의 한 도로에 주차된 승용차 안에서 50대 여성 A(59)씨와 20대인 발달장애 아들이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수년전 남편과 이혼한 A씨는 홀로 발달장애인 아들을 키워왔다. 낮에는 주간보호센터에 아들을 맡겨 왔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지난 2월부터 광주지역의 복지시설은 모두 폐쇄됐다. 낮에 아들을 돌볼 방법을 찾지 못한 A씨는 궁여지책으로 아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하지만 병원에 적응하지 못한 아들은 3개월 만에 몸무게가 10㎏ 넘게 빠졌다. 죄책감을 느낀 A씨는 결국 아들을 퇴원시켰다. 다시 복지시설을 찾았지만 아들을 돌봐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다시 정신병원 입원을 고려하던 A씨는 끝내 유서 한 장을 남긴 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앞서 제주에서 40대 여성과 발달장애 아들이 함께 숨진 채 발견된 지 약 3개월 만이었다.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한국이 모범적 방역을 펼쳤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유독 장애인에 대해서는 예외적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5년 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으며 당국이 효과적인 방역체계를 구축했지만, 감염병에 취약한 장애인을 위한 대책은 수준이 나아지지 않았다. 정부가 최근 장애인 관련 대응지침을 담은 매뉴얼을 만들었지만 이마저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또다른 감염병 유행 사태가 발생하기 전 사회적 약한 고리인 장애인에 대해 강화한 보호책이 절실하다.
소송은 메르스 감염병 위기관리 대응지침으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장애인들을 대신해 제기됐다. 그중 한 명인 뇌병변 장애를 가진 B씨는 2015년 국내에서 메르스가 확산할 당시 자가격리 대상자였다. 그가 정기적으로 혈액투석을 위해 방문한 병원에서 감염환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노모와 함께 지내는 그는 활동지원 서비스도 받지 못한 채 14일간 집안에서 격리됐다. 같은 병원에 다녔던 지체장애인 C씨도 메르스의 직격탄을 맞았다. 그는 자가격리 대상자가 아니었지만, 그의 활동지원사가 감염이 우려된다며 연락을 끊고 서비스를 중단했다. 도움이 없이는 일상생활조차 불가능했던 그는 스스로 병원 입원을 택했다.
감염병 유행 시 장애인을 위한 지침을 마련하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로 올해 초 코로나19 사태를 맞았다. 장애인은 보조인 없이 예방수칙의 이행이나 일상생활 영위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고, 기저질환 등으로 감염에 의한 피해가 상대적으로 심각할 수 있다. 무엇보다 돌봄의 단절로 장애인이나 그들의 보호자가 책임을 온전히 떠안는 상황이 발생했다.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가 올 1월 중순부터 대국민 브리핑을 진행할 당시에도 장애인을 위한 대책은 부실했다. 한 장애인단체가 청각장애인의 안전과 정보에 대한 접근권 보장 등을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을 제기한 이후인 2월에서야 코로나19 브리핑에 수어통역사가 배치됐다.
◆정부 매뉴얼에 어떤 내용 담겼나
장애인계의 지속된 요구 끝에 정부는 최근 감염병 상황에서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감염병 대응 매뉴얼’을 처음으로 내놨다. 메르스 관련 소송이 제기된 지 약 4년 만이자 국내에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날을 기준으로는 156일 만이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매뉴얼에는 장애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상황별 대응책을 담았다. 매뉴얼에는 크게 △감염병 정보 접근성 제고 △이동서비스 지원 △감염예방 및 필수 의료지원 △돌봄 공백 방지 △장애인시설 서비스 운영 등 5가지 영역으로 나뉘어 세부 고려사항과 사례를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시각·청각·언어·발달장애인의 감염병 정보접근성 제고를 위해 수어통역과 해설화면 제공, 영상수어상담, QR코드를 비롯한 음성변화 출력 인쇄물 배포, 선별검사소에 그림 설명판 제공 등을 고려하도록 했다. 보행상 장애인에게는 자택과 의료기관 등 격리장소를 이동할 경우 휠체어탑승 차량을 우선 이용하도록 하고 와상장애인의 구급차 이송 지원, 시각장애인 보호자 동행을 제시하고 자가격리 시 생필품·방역 물품을 지원하도록 했다.
내부 장기의 장애 및 중증장애인의 경우 기저질환 등 고위험군은 확진 시 병원 우선 격리, 전화 치료·처방·대리인 처방약 수령 등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할 것과 공적마스크를 제한 없이 대리 구매할 것 등을 제시했다.
일상생활 지원 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돌봄 공백 방지를 위해 활동지원에 대한 추가급여 제공과 서비스 제공인력 풀 확대, 이용시설 폐쇄(중단)나 보호자 부재 시 가족 돌봄 및 긴급 돌봄 실시, 돌봄·이용서비스 단절 등에 따른 가정생활 지원을 마련해 시행토록 했다.
장애인시설 감염예방과 서비스 유지를 위한 사항으로는 대체인력의 우선 투입 및 유관기관 서비스 연계체계 구축과 장애인생활시설 폐쇄 시 임시시설·주변 생활치료센터 등과 지역 대응체계 마련 등을 제시했다.
◆실효성 떨어지는 알맹이 없는 매뉴얼
장애인단체들은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매뉴얼이 구체성이 떨어지고 예산조차 마련돼 있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매뉴얼은 권고 수준에 그쳐 재정 여력이 없는 지자체에서는 시행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전근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이번 매뉴얼의 가장 큰 문제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장애인 확진자가 병원에 입원할 경우 의료인력 외에도 생활을 보조할 인력을 배치하라고 한 점을 예로 들며 “해당 인력 배치를 중앙정부가 하는지 지자체인지 병원인지 혹은 제3의 기관인지 정해지지 않았다”며 “인력을 배치한다는 것은 이에 대한 판단 권한을 갖고 예산을 부담하는 것인데 구체적인 지침이 없다”고 지적했다.
전 정책국장은 또 “3차 추경안에도 이 매뉴얼을 실행할 예산이 전혀 배정되지 않았다”며 “애초에 실제 작동하지 않을 내용을 발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달 3일 국회는 코로나19 대책을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인 35조1000억원의 3차 추경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김철환 장애벽허물기 활동가도 매뉴얼에 구체성이 결여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장애인의) 병원 등 진료과정을 넘어 일상에서의 조치, 감호소 등 격리시설에서의 조치에 대한 내용은 없다”며 “중장기적으로 전문인을 양성하고 확보할 방안이 마련하지 않는 것도 국민의 안전을 도모해야 할 정부의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문제 제기에 보건복지부는 다음달 인권위, 장애인계와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대응 매뉴얼을 보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