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국민청원 도입 3년… ‘공론의 장’ 역할 속 과대대표 논란도 [심층기획]

올 4월까지 82만여건 청원·1억3600여건 동의
‘서민·약자들의 아픔’ 함께 공감… 현실적 문제해결엔 한계
“청원 내용에 분노 느껴서 참여”… 71%가 “답변에 불만족”
“특정 집단에 대한 비난·혐오성 청원 국민 분열 부르는 측면도”

“국민청원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단번에 바뀔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어떤 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해 참여하고 있어요.”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의 답변 기준인 ‘20만명’을 넘어선 청원 2건에 동의를 표했다는 유모(28)씨는 “국민청원은 ‘공론화의 장’”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구급차 막아 세운 택시기사 처벌’ 청원과 ‘주민의 갑질로 극단적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청원에 동의를 표했다는 이모(61)씨는 “국민청원을 통해 공론화가 되니 경찰에서도 더 적극적으로 조사에 나선 것 같다”며 “앞으로도 철저한 조사가 필요할 것 같은 청원 내용에 대해선 동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17일 공식 출범 3주년을 맞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최근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공론장 역할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가 우세하지만, ‘부실한 정부의 답변’·‘일부 의견 과대대표’·‘편 가르기식 여론 조성’ 등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16일 국민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20만명 이상 동의를 얻은 청원은 9건으로, 동의 인원만 약 340만명에 달한다. 가장 많은 동의를 얻은 ‘구급차 막아 세운 택시기사 처벌’ 청원은 73만여명의 시민에게서 지지를 받으며 지난 2일 청원기간이 종료됐다. 사건 자체는 올해 6월 초 벌어진 일이었지만, 구급차에 탑승했던 환자의 가족이 지난달 3일 청원을 올린 뒤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서울경찰청장까지 나서 의혹에 대한 전반적인 수사를 약속하기도 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청원은 박 전 시장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 도화선이 됐다. 해당 청원은 게시 당일 이미 청와대 답변기준을 넘어서면서, 여권을 중심으로 추모 분위기가 형성되던 당시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의 입장에 선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국민청원이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뉴스 등에서의 언급량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빅데이터 분석 사이트인 ‘썸트렌드’에 따르면 지난 7월1일부터 전날까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블로그, 포털 뉴스에서 ‘국민청원’이 언급된 수는 총 7만1124건에 달한다. 최근 3개월의 언급 횟수(12만1793건)를 분석해보면, 하루 평균 1300여건이 언급된 것으로 파악됐다.

 

◆“공론화 큰 역할… 현실적 변화는 의문”

 

도입 이후 82만6000여건의 청원과 1억3600여건의 동의 수(올해 4월 기준)를 기록하며 우리 사회의 여론을 선도하는 ‘파급력’을 입증해 온 국민청원을 놓고, 시민들은 대체로 ‘현실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문제점의 공론화에는 큰 역할을 수행한다’고 평가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우지숙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말 국민청원에 참여해본 전국 20∼50대 성인 남녀 1141명을 대상으로 청원에 참여하게 된 동기를 물었더니 ‘청원 대상 사안에 대해 분노를 느껴서’(36.7%)와 함께 ‘청원 사안에 대한 내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서’(21.7%),‘청원 대상 사안이 중요한 이슈라는 것을 정부·대통령이 알았으면 해서’(11.8%) 등이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만약 국민청원이 없었다면 자신의 의사를 어떻게 표현했을지 묻는 질문에는 ‘주변 사람과 얘기했을 것’(24.4%)이라는 응답이 가장 높았고, 아예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응답도 13.8%나 차지했다. 응답자 중 74.4%는 이러한 국민청원 외의 의사 표현 방법이 국민청원만큼 만족스럽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청와대 국민청원이 국민 의사 표현의 공론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청와대 및 정부의 청원 답변에 대한 시민들의 만족도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답변이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응답자가 70.8%에 달했으며, 그 이유로는 ‘현실적으로 달라지는 일이 없어서’(62.3%) 등이 꼽혔다. 연구팀이 청원에 참여해보지 않은 67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를 보면, 불참 이유는 ‘어떻게 참여하는지 몰라서’(20%)와 ‘어차피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것 같아서’(18.7%) 등이었다.

 

불참자들을 대상으로 국민청원의 어떤 부분이 달라지면 앞으로 참여에 나설지를 묻자 ‘참여 간소화’, ‘청원 내용 필터링’, ‘실질적 문제 해결’, ‘진행 과정 공개’ 등으로 답변이 수렴하는 모습을 보였다. 불참자들 중에선 “단순히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실효성 없는 언론 플레이는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해소돼야 참여할 것”이라거나, “참여해봤자 ‘재미있는 이슈네’ 하고 넘어가 버리는데 그걸 누가 참여하겠나”라는 등의 비판적 목소리도 나왔다.

 

◆“답변 실효성 강화·‘과대대표’ 문제 해결해야

 

국민청원이 향후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효능감을 주고, 다음 정권에서도 안정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선 청원 답변부터 이후 제도 개선까지의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제3의 기구 설치’ 및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성배 국민대 교수(법학)는 “(국민청원은) 청와대라는 국가기관의 정점에 청원하게 되면서, 청원사항이 터무니없는 것부터 시작해 대통령 권한 밖에 있는 사법부의 독점적 권한이거나, 국회의 권한 등에 해당하는 내용도 (국민청원에) 올라오게 된다”면서 “이로 인해 청와대에서 답변이 모호하게 나갈 수밖에 없는 문제가 존재하게 된다”고 말했다. 대안으로 김 교수는 청와대 외에도 여야 국회의원, 시민단체, 정부부처 등이 함께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답변기준을 충족한 청원의 내용 확인부터 관련 답변을 어느 기관에서 내놓을지, 실제 제도 개선은 어디서 이어나갈지 등 일종의 ‘교통정리’와 사후관리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비록 답변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더라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청원은 위원회 논의를 거쳐 관련 기관에 넘기도록 하거나, 답변 후 청원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등을 기술한 백서를 위원회 차원에서 매년 발간하면 청원에 대한 효능감과 만족감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주장의 골자다.

 

김 교수는 “(국민청원이) 정권이 바뀌는 것과 관계없이 지속가능하려면 법제화가 필요하다”며 “(법제화 과정에서) 명백한 허위 청원이나 국가공권력을 낭비하는 청원은 형사처벌이나 민사적 배상을 물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 집단의 의사가 ‘과대대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보완해야 할 점 중 하나로 꼽힌다. 우지숙 교수 연구팀의 조사 결과에서는 ‘소득이 높을수록’, ‘정치 효능감·정치 관심도가 높을수록’, ‘인터넷 사용률·신문 구독률이 높을수록’ 국민청원에 더 많이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사회학)는 “국민청원 자체가 (문재인) 대통령 선출 시 유리했던 정치지형에 대한 자신감의 표시로 진행된 것이기 때문에, 친여 여론이 과대대표되는 부작용은 피하기 어렵다”며 “최소한의 팩트 체크 이후 확인된 사실에 대해서만 열람 기회와 투표 기회를 주는 1차 스크리닝(점검) 작업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특정 집단이나 인물에 대한 비난 또는 혐오성 청원으로 사회적 편견을 만들거나, 일종의 ‘편 가르기’를 고착화할 수 있다는 문제점 등도 계속 보완해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진다.

 

김중백 교수는 “(국민청원이) 일종의 ‘감정 배출구적’ 역할을 한 측면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국민 화합보다는 국민 분열의 측면이 더 크기에 지금과 같은 형태로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